태양광 짓고도 송전 못하는 ‘전력망 병목’, 분산형 그리드로 뚫는다

태양광 발전소가 늘어도 기존 중앙집중형 전력망의 용량 한계로 전기를 보내지 못하는 ‘계통 접속 지연’ 문제가 재생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부가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210억 원을 투입, 지역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차세대 분산형 전력망’ 구축을 본격화한다. 핵심은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지능형 운영 시스템을 도입해 전력망의 수용성과 유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지역 단위 배전망 혁신에 집중한다. 태양광 접속 대기가 심각한 지역 배전망에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보급해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수용한다. 낮 시간대 초과 생산된 태양광 전력을 ESS에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간대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올해 20개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총 85개의 ESS를 구축해 약 485MW의 태양광 발전소를 추가로 접속시킬 계획이다. 또한 농공단지, 대학가 등 중소형 부하 밀집 지역에는 자립형 전력망인 마이크로그리드를 구축해 배전망의 부하를 줄이고 활용도를 높인다.

경직된 접속 제도 역시 유연하게 바뀐다. 지금까지는 배전선로의 정격용량에 맞춰 수동적으로 접속을 관리했지만, 앞으로는 출력 제어를 조건으로 재생에너지 접속 허용량을 대폭 확대한다. 한국전력은 단순 배전망 관리자에서 벗어나 차세대 배전망 운영시스템(ADMS)을 통해 발전량을 예측하고 ESS 충방전을 지시하는 등 능동적인 운영자(DSO) 역할을 수행한다.

전력망 건설을 대체하는 새로운 보상 체계도 도입된다. ‘전력망 비증설대안(NWAs)’ 제도는 배전망에 ESS를 설치해 추가적인 선로 증설 없이 태양광 접속을 가능하게 한 사업자에게 망 공사비에 상응하는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는 막대한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전력망 건설을 최소화하는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시장 제도도 개편된다. 제주도부터 전력수요 입찰제도를 도입해 재생에너지 공급이 많은 시간대에 전기차 충전, 난방 전환(P2H) 등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남는 전기를 버리지 않고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낳는다.

정부는 차세대 분산형 전력망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산업 생태계 조성에도 나선다. 관련 대학, 공기업,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케이-그리드(K-GRID) 인재·창업 밸리’를 조성하고, 핵심 기술 개발과 실증을 위한 테스트베드를 마련해 세계 시장을 선도할 기반을 다진다.

이러한 분산형 전력망 구축은 단순히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선다. 재생에너지 보급의 가장 큰 장애물을 제거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앞당기고, 관련 기술과 산업을 육성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적인 사회 인프라 전환 사업이다. 중앙집중형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각 지역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로의 대전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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