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경주 정상회의, 한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 열다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한국 외교의 역사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통해 주변 강국과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정상회의는 한미 관세협상 난항, 미중 전략경쟁 심화 등 여러 난관 속에서 개최되었으나, 결정적인 분수령이 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한국의 요구를 수용하며 투자액을 조선업 투자와 일반 투자로 분리하고 분할 납부 방안을 합의했다. 이는 한국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한국 경제 역량 강화에 기여할 ‘윈윈’ 합의로 평가된다.

안보 측면에서도 큰 진전을 이뤘다. 한국 정부의 숙원 사업이었던 핵추진 잠수함 도입에 대해 미국이 동의한 것은 양국 정상 간 최상급 신뢰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향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권한 부여로 이어질 수 있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중 정상회담은 2016년 사드 갈등 이후 경색되었던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북한의 비핵화 관련 초강경 비난에도 불구하고 관계 정상화를 이뤄낸 점은 더욱 의미가 깊다. 또한, 우익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무난하게 진행한 것 역시 예상치를 뛰어넘는 성과로 평가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주변국 지도자들의 성향 차이를 넘어 국익 중심의 외교 리듬을 유지하며 균형감과 주도력을 보여주었다. 미중 정상회담 역시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며, 한국이 외교적으로 신뢰받는 플랫폼 국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다자 외교 무대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 보호무역주의 기조 속에서도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경주 선언문을 채택하는 외교 역량을 과시했다. 특히, AI 관련 산업 발전과 관련하여 글로벌 대응 논의를 선도하며 사전 경보 및 공동 대응 틀을 제시한 것은 책임 있는 선진국 외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공공외교 분야에서도 천년고도 경주의 역사성을 활용한 서사와 K-푸드, K-뷰티를 결합한 프로그램은 세계인의 찬사를 받으며 대한민국이 진정한 문화 강국임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물론 과제도 남아있다. 한미 관계에서 합의 문서화와 국회 후속 절차, 핵추진 잠수함 추진 과정에서의 잠재적 논란, 한중 관계 복원에 대한 사회적 갈등 등이 그것이다. 초당적 협력 체제가 구축되지 않으면 성공적인 APEC 개최가 국론 분열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참가국들과의 쌍방향 교류 프로그램 부족, 숙박시설 등 인프라 부족 문제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는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세계에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과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글로벌 경제와 안보 질서를 조율하는 자리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것은 큰 감격과 자부심을 안겨준다. 이제는 성공의 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제도적 기반 구축과 정책의 연속성 확보를 통해 대한민국이 협력의 틀을 설계하고 새로운 질서를 제안하는 주도적 협력국가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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