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문화/생활

  • 사라진 산업, ‘고래’의 향수에 깃든 장생포의 현재와 미래

    급격한 산업화와 환경 변화 속에서 과거 번성했던 산업이 사라지면서 지역 사회가 겪는 정서적, 경제적 어려움은 깊어지고 있다. 울산 장생포 지역의 경우, 과거 주요 생업이었던 포경 산업의 몰락은 지역 경제뿐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과 추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규모의 포경 산업은 존재하지 않지만, 장생포는 사라진 산업의 흔적과 그 속에 담긴 향수를 현재까지 이어가는 독특한 방식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과거 회상을 넘어, 도시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내고 공동체의 미래를 준비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장생포의 이야기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잡이 그림과 각종 유물들은 이곳이 예로부터 고래가 풍부하게 서식했던 깊은 바다였음을 증명한다. 특히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지리적 이점, 풍부한 먹이 자원, 그리고 큰 배를 대기 용이한 자연환경은 장생포를 고래들의 이상적인 서식지이자 인간의 중요한 어업 기지로 만들었다. 태화강, 삼호강, 회야강 등 하천에서 유입되는 부유물과 플랑크톤은 고래의 먹이가 되는 새우 등 작은 물고기들을 끌어들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이곳을 찾는 ‘귀신고래’를 비롯한 다양한 고래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이러한 천혜의 환경 덕분에 장생포는 6.25 전쟁 이후부터 1980년대 상업 포경 금지 이전까지 ‘고래의 땅’으로 불릴 만큼 어업이 크게 성행했던 곳이다. 당시 수출입품을 실어 나르는 대형 선박들이 빼곡했으며, 6~7층 규모의 냉동 창고가 즐비할 정도로 활기찬 산업 도시의 면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상업 포경 금지 결정 이후, 장생포의 찬란했던 고래 산업은 급격히 쇠퇴했다. 1973년 양고기를 가공하던 남양냉동이 들어섰다가 1993년 명태, 복어, 킹크랩 등을 가공하던 세창냉동으로 바뀌었으나,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냉동 창고는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다. 이러한 폐허가 된 공간을 지역 사회와 지자체가 나서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2016년 울산 남구청은 건물과 토지를 매입하고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2021년, 폐냉동창고를 ‘장생포문화창고’로 재탄생시켰다. 과거 산업 시설의 흔적을 그대로 살린 업사이클링을 통해, 이곳은 이제 누구나 무료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변모했다. 총 6층 규모의 건물에는 소극장을 비롯해 녹음실, 연습실이 마련되어 지역 문화 예술인들의 거점 역할을 하며, 특별 전시관, 갤러리, 상설 미디어아트 전시관 등을 갖추고 있어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특히 2층 체험관의 ‘에어장생’ 항공 체험 프로그램과 같은 어린이와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콘텐츠,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한국 대표 화가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감성과 경험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장생포문화창고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2층에 상설 전시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이다. 이곳은 과거 울산의 중화학공업 발전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특히 산업화의 이면에 존재했던 환경 문제와 그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을 조명한다. 1980년대 조성된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제련소, 석유화학공장 등이 집중되면서 발생한 중금속 배출은 ‘온산병’이라 불리는 심각한 중금속 중독 질환을 유발했고, 이는 산업 발전의 대가로 치러야 했던 어두운 그림자였다. 전시를 통해 과거의 옳았던 일과 현재에는 틀린 일들을 배우며, 우리는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장생포의 ‘고래고기’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상업 포경이 금지된 이후에도, 장생포의 고래요릿집들은 혼획된 고래 등을 합법적으로 유통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2만 원에 달하는 ‘모둠수육’과 같은 메뉴는 쇠고기와 흡사한 붉은 빛깔의 살코기, 쫄깃한 껍질, 그리고 다양한 부위의 다채로운 맛으로 ‘일두백미(한 마리에서 열두 가지 맛)’라 불리는 고래고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우네(가슴 부위)’와 ‘오배기(피하지방과 근육층이 겹쳐진 부위)’와 같은 고급 부위는 기름진 고소함과 쫄깃한 식감의 조화를 자랑한다. 과거 비린 고래고기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진 이들도 다시 맛보게 만드는, 부위마다 다른 맛과 식감은 과거의 추억을 소환한다. 결국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단순히 ‘고래를 먹는 장소’가 아니라, 사라진 산업, 사라진 생업, 사라진 포경선의 향수를 고기 한 점에 담아 음미하며 과거를 애도하고 회상하는 의례적 공간이 된다. 고래로 꿈을 꾸었던 어부들, 고래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던 사람들과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이 이곳에 쌓여 있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사라지지 않으며, 그 맛과 기억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고래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 중·고등학생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 전면 금지, 교육 현장의 ‘몰입’ 회복 시도

    2026년부터 초·중·고등학생들이 학교 수업 시간 중에 스마트폰 등 스마트 기기를 원칙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소식이 교육계를 뒤흔들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이 정책은 단순한 기기 사용 제한을 넘어, 학생들이 학습에 더욱 몰입하고 교실 내 상호작용을 회복하도록 유도하려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시도로 분석된다.

    이러한 정책 발표의 배경에는 학생들의 학업 집중력 저하와 교실 내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인한 다양한 부작용이 자리하고 있다. 원문 자료에 따르면, 일부 학교에서는 디지털 선도학교라는 명목 하에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자율에 맡기면서, 학생들이 쉬는 시간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는 초등학교 때 제한적인 스마트폰 사용으로 별 탈 없이 지내던 학생들마저 중학교 입학 후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을 이유로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거센 반항을 하고, 결국 학부모들이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더욱이 최근 강의하러 방문한 한 중학교의 모습에서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부각된다. 등교 후 아이들의 스마트폰을 수거하여 점심시간 등에 친구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모습을 본 것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스마트폰 없이 또래와 소통하는 건강한 교실 문화를 갈망하는 교육계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또한, 기술 혁명의 대명사로 불리는 빌 게이츠조차 자녀들에게 14세까지 스마트폰을 주지 않고 이후에도 사용 시간을 엄격히 제한했다는 일화는,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 과다 사용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면서 스마트폰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가 미래 삶을 좌우할 수 있다고는 하나, 요즘 아이들처럼 스마트폰에 깊이 빠져 사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으로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예외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특수교육이 필요한 경우, 교육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긴급 상황 대응의 경우, 그리고 학교장이나 교원이 허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업 중 학생들의 스마트 기기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이는 학생들이 학습 활동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교실 내에서 발생하는 사이버 폭력, 성 착취물 노출 등 다양한 문제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지난해 10월, 학교에서의 휴대전화 사용 제한이 인권 침해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인권위는 2014년 학교의 휴대전화 수거를 인권 침해로 결정한 이후 10년간 다양한 문제가 나타났으며, 더 이상 학교의 휴대전화 수거를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판단·인식 능력이 형성되는 중인 학생들에게 부모의 교육과 교원의 지도는 궁극적으로 학생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과 인권 실현에 기여하며, 교육 행위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정책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경우, 학생들은 수업 시간 동안 스마트폰이라는 방해 요인 없이 학습 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학업 성취도 향상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직접적인 소통, 학교 도서관 이용, 운동 등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건강한 교우 관계를 형성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쌓는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학부모들 또한 자녀들의 스마트폰 사용 문제를 둘러싼 다툼에서 벗어나, 자녀들이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다양한 경험 속에서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부의 결정을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제한된 교실에서 진정한 배움과 성장이 이루어지기를 전망한다.

  • 갯벌, 단순한 불편함 넘어 탄소중립의 숨은 영웅으로 재조명되다

    서해안의 광활한 갯벌은 오랫동안 낚시꾼들에게는 불편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갯벌이 그저 진흙 바다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해양경찰청이 선보인 ‘하이 블루카본’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통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갯벌이 지구 온난화를 막는 강력한 탄소 저장고이자, 철새들의 생명을 지키는 귀중한 생태 공간이라는 사실을 조명하며 갯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해양경찰청은 9월 2일, 포스코이앤씨, 한국전력공사, 월드비전, 인천시, 광양시, 부안군 등 민간 기업 및 여러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하이 블루카본’ 해양환경 교육 누리집(hibluecarbon.kr)을 공개했다. 이 플랫폼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다양한 교육 콘텐츠와 체험형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갯벌의 숨겨진 가치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교육 방식이다. 스마트폰으로 QR 코드를 스캔하면 화면 속에 고래가 나타나는 증강현실(AR) 체험은 집에서도 생생하게 바다를 만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탐험대장 노을이’와 ‘꼬마 해홍이’와 같은 AI 캐릭터들은 음성과 텍스트를 통해 염생식물의 중요성과 블루카본의 정의를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흥미롭게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숲보다 50배 빠른 탄소 흡수율과 수백 년간 탄소를 저장하는 해양 생태계의 능력은 갯벌이 단순한 진흙이 아닌, 지구를 지키는 ‘숨은 영웅’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하이 블루카본’은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보존 노력으로 이어진다. 갯벌이 철새들의 중요한 먹이터이자 생물 다양성의 보고라는 사실은, 낚시 외에 갯벌을 활용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또한,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이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라는 점은 우리 갯벌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한다. 퉁퉁마디, 해홍나물과 같은 염생식물에 대한 설명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갯벌 생태계를 지탱하는 이들의 역할을 ‘숨은 영웅’으로 표현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자료실 메뉴에서는 염생식물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담은 세밀화 엽서를 제공하며, 교사들이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교안과 영상도 마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나도 해양환경 보전에 동참하겠다’는 환경 서약은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록 온라인 체험 신청이 아직 열리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플랫폼은 국민들이 해양환경 보전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 플랫폼의 진정한 의미는 민·관 협력의 성공적인 사례라는 점에 있다. 해양경찰청은 인천시, 광양시, 부안군 등 지자체와 함께, 그리고 포스코이앤씨, 한국전력공사, 월드비전 등 민간 기업·단체와 손잡고 염생식물 파종 및 군락지 조성과 같은 현장 복원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인천 소래습지, 부안 줄포만, 광양 섬진강 하구 갯벌 등 서해안 일대 약 2만 평 부지에서 1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칠면초, 퉁퉁마디 등 염생식물 100kg을 파종하는 등 블루카본 보호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러한 노력은 탄소흡수원 확대와 해양생태계 복원을 동시에 이루며, 해양환경 보전을 단순한 구호를 넘어선 실천 가능한 정책으로 만들고 있다.

    결론적으로, ‘하이 블루카본’은 ‘탄소중립’과 ‘기후 안정’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민·관이 협력하며 나아가는 과정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플랫폼은 국민들이 일상 속에서 해양환경 보전에 동참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을 제시하며, 해양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한 첫걸음을 디지털 공간에서 열어주는 중요한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해양환경 정책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 생활 속 작은 실천에서 출발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과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낚시꾼의 발밑 갯벌, 이젠 ‘탄소 저장고’… 해양경찰청 ‘하이 블루카본’ 플랫폼으로 가치 재조명

    서해안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던 이들에게 갯벌은 단순히 불편한 땅이었다. 그러나 해양경찰청이 선보인 해양환경 온라인 교육 플랫폼 ‘하이 블루카본’은 이러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갯벌이 지구 온난화 방지의 핵심 열쇠이자, 생명의 보고라는 사실을 디지털 콘텐츠로 생생하게 전달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동안 갯벌은 낚시꾼들에게 걸림돌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갯벌은 숲보다 50배 빠르게 탄소를 흡수하는 ‘숨은 영웅’이며, 지구 온난화를 막는 중요한 탄소 저장고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더 나아가 갯벌은 철새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생명의 뷔페’ 역할을 하는 귀중한 생태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 ‘하이 블루카본’ 플랫폼은 해양경찰청이 민·관 협력을 통해 9월 2일 새롭게 선보인 야심찬 프로젝트다.

    ‘하이 블루카본’은 포스코이앤씨, 한국전력공사, 월드비전, 인천시·광양시·부안군 등 다양한 기관과 지자체가 참여하여 풍성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QR 코드를 찍으면 화면에 고래가 나타나는 증강현실(AR) 체험은 집에서도 바다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탐험대장 노을이’와 ‘꼬마 해홍이’ 같은 AI 캐릭터는 염생식물의 역할과 블루카본의 중요성을 음성과 텍스트로 설명하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흥미롭게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숲보다 50배 빠른 탄소 흡수율과 수백 년간 탄소를 저장하는 해양 생태계의 능력을 알게 되면서, 갯벌이 가진 놀라운 잠재력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갯벌이 철새들의 중요한 먹이터라는 사실은 갯벌의 생물 다양성 보존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이 세계 5대 갯벌에 속한다는 점은 국민적 자부심을 높이는 동시에, 이 소중한 자연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부여한다. 퉁퉁마디, 해홍나물과 같은 염생식물들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갯벌 생태계를 굳건히 지탱하는 ‘숨은 영웅’이라는 설명은 갯벌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 나게 한다. 플랫폼 내 ‘배움자료 살펴보기’ 메뉴에서는 염생식물 세밀화 엽서를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교사들이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교안과 영상 자료도 제공된다.

    ‘하이 블루카본’의 또 다른 강점은 참여형 콘텐츠에 있다. ‘나도 해양환경 보전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직접 적어 남기는 환경 서약은 작은 실천이지만 해양 환경 보전에 대한 의미를 더한다. 비록 아직 온라인 체험 신청은 열리지 않았지만, 이는 향후 더욱 확대될 참여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이 플랫폼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온라인 콘텐츠 제공에 그치지 않고, 민·관 협력이라는 실질적인 현장 활동과의 연계에 있다. 해양경찰청은 인천시, 광양시, 부안군과 협력하고 포스코이앤씨, 한국전력공사, 월드비전 등과 손잡고 염생식물 파종 및 군락지 조성 같은 현장 복원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서해안 일대 약 2만 평 부지에서 1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칠면초·퉁퉁마디 등 염생식물 100kg을 파종하는 블루카본 보호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러한 현장 활동과 온라인 교육의 조화는 해양환경 보전을 구호에 그치지 않는 실천 가능한 정책으로 만들고 있다. 이는 ‘탄소중립’과 ‘기후 안정’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민·관이 함께 나아가는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하이 블루카본’은 바다와 갯벌이 지닌 엄청난 잠재력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일상 속 작은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양환경 정책은 거창한 구호가 아닌, 국민 개개인의 생활과 습관에서 시작해야 한다. 해양은 탄소중립과 기후 안정을 위한 핵심 자원이므로,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책적 노력과 더불어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하이 블루카본’은 바로 이러한 국민 참여의 첫걸음을 디지털 공간에서 열어주는 훌륭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 분리된 세대 지원, ‘연령통합사회’로 전환해야 할 시점

    우리 사회는 저출산과 급격한 고령화라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출생아 수는 줄고, 노인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은 단순히 숫자의 변화를 넘어 세대 간의 단절을 심화시키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우리 주변의 어르신들 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인구 구조의 변화가 세대 간의 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기존의 정책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세대를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에 집중해왔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위한 돌봄 정책, 청년들의 주거 문제 해결, 그리고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개별적인 접근 방식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대 간의 만남의 기회를 줄이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의 축소를 야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분리된 정책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연령통합사회’로의 전환이 시급히 요구된다.

    연령통합사회가 추구하는 것은 복잡한 개념이 아니다. 이는 어린이, 청년, 중장년, 어르신 등 다양한 연령층이 하나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도시와 동네를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놀이터 옆 벤치에서 어르신이 책을 읽고, 청년들이 지역의 마을 카페에서 주민들과 함께 일하는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연령통합의 목표이다. 이미 OECD에서도 ‘모든 세대를 위한 도시(Cities for All Ages)’라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도시 공간에서 세대 간의 만남과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안전한 보행 환경 조성, 세대를 잇는 공동체 공간 마련, 그리고 공공 서비스 접근성 강화 등이 이러한 변화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언급되고 있다.

    연령통합사회는 단순히 다양한 세대가 한 공간에 모여 사는 것을 넘어, 세대 간의 경계가 뚜렷하게 나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공존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동네 공간, 나이에 관계없이 접근 가능한 교통 및 서비스, 그리고 세대 간의 어울림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커뮤니티 설계가 핵심이 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연령통합이 단순한 복지 정책의 확장을 넘어, 생활 환경의 설계와 운영 방식 전반에 걸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청년 주택과 고령자 주거 시설이 완전히 분리되기보다는, 같은 단지 안에서 서로의 삶의 리듬을 공유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연령통합은 단순히 같은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와 프로그램, 그리고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주는 디자인이 종합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효과적인 연령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현재 대통령 선거 공약들을 살펴보면 저출생 대응은 보육, 양육비, 주거 지원 중심으로, 고령사회 대응은 돌봄과 의료체계 강화 중심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각각의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대를 분리하여 바라보는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세대를 분리하여 지원하는 방식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이다. 연령에 따라 정책을 세분화하는 대신, 전 생애주기를 아우르고 각 세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정책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새 정부는 이러한 연령통합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도시 공간과 정책, 서비스의 설계 전반에 걸쳐 이러한 원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복지를 확장하는 차원을 넘어, 세대 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건강한 도시와 사회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아이였고, 지금 나이를 먹고 있으며, 미래에는 노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도시와 정책이 잊지 않고, 나이와 세대를 가르는 경계를 허물며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간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전환의 시간을 맞이해야 할 때이다. 세대는 나눌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식으로서, 이제는 세대를 잇는 도시, 나이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연령통합사회를 그려나가야 한다.

  • 수몰 위협 속에 되살아난 6000년의 예술, 반구천 암각화의 미래는

    반구천 암각화가 지난 반세기 동안 겪어온 수몰 위협은 그 가치를 제대로 보존하고 후대에 온전히 물려주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고래의 유영이 생생하게 새겨진 바위가 댐 수위 아래 잠겨 박락이 떨어져 나가고, 어설픈 탁본으로 인해 원본이 상실되는 일들이 발생해왔다. 최근 몇 년간 잦은 가뭄으로 암각화가 비교적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점증하는 기후변화와 댐 운영상의 변수들 앞에서 ‘반구천’이라는 이름이 언제든 ‘반수천’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물속에 잠긴 문화유산은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잃을 수 있으며, 등재 이후의 보호 및 관리 계획이 부실할 경우 유네스코는 등재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점은 ‘기적의 현장’을 ‘수몰의 현장’으로 되돌리는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반구천 암각화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는 단순한 보존을 넘어선 ‘솔루션’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를 계기로 울산시는 ‘고래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래 축제 개최 등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이제는 암각화를 체험형 테마공원, 탐방로, 교육 프로그램, 워케이션 공간까지 아우르는 생동하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AI 기반의 스마트 유산관리 시스템 구축과 암각화 세계센터 건립 등 미래 지향적인 전략도 병행될 예정이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얻을 수 있는 보존 사례는 이러한 노력에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두 유적 모두 관광객 증가로 인한 훼손 문제를 겪은 후, 일반 공개를 중단하고 정밀한 복제품이나 재현 동굴을 설치하여 ‘간접 관람’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원본의 보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사례들은 문화유산의 공개와 보존 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현대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후대에 온전히 물려주어야 하는 책임감을 강조한다.

    반구천 암각화는 6000여 년 전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성, 자연과의 교감이 바위 위에 새겨진 ‘역사의 벽화’로서, 인류와 함께 나눌 이야기로 승화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1970년 12월 24일 최초 발견된 천전리 암각화와 1971년 12월 25일 발견된 대곡리 암각화는 각각 청동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유적으로, ‘반구천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를 “선사 시대부터 6000여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이자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하며 ‘사실성, 예술성, 창의성’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이러한 평가와 함께, 문화유산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시간의 언어’로서, AI, 3D 스캔, 디지털 프린트 등 현대 기술을 활용하여 원본의 ‘아우라’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안전하게 보존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방안이 모색될 것으로 기대된다.

  • 조선왕릉, 단순 유적을 넘어선 ‘역사 학습의 장’으로 거듭나다

    조선왕릉과 궁궐을 잇는 여행 프로그램 「2025년 하반기 왕릉팔경」 운영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아름다운 유적을 둘러보는 것을 넘어, 우리가 잊고 있었던 혹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역사적 맥락과 제도의 변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단순한 왕릉 탐방을 넘어 대한제국 황실 관련 유적까지 아우르는 이번 여정은, 조선과 대한제국을 관통하는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문화유산으로서 조선왕릉의 가치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념비적인 유적을 직접 걸으며 배우고 느끼는 여행은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을 선사한다. 「2025년 하반기 왕릉팔경」 프로그램의 새로운 여정 중 하나인 ‘순종황제 능행길’은 이러한 프로그램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구리 동구릉에서 시작하여 남양주 홍릉과 유릉까지 이어지며, 왕릉과 왕릉을 잇는 길 위에서 역사의 숨결을 따라가는 특별한 체험으로 마련되었다. 능침 답사가 포함되어 있어 참가 인원은 회당 25명으로 제한되지만, 이미 높은 신청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국민들이 단순한 관광을 넘어 역사적 깊이를 탐구하려는 욕구가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번 여정은 조선 왕실 중심의 탐방에서 벗어나 대한제국 황실 관련 유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깊다. 이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왕릉 문화를 직접 비교하며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근대 전환기의 역사와 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동구릉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하여 선조, 인조, 문종, 경종, 영조, 추존왕 문조, 현종, 헌종 등 아홉 기의 왕릉이 모여 있는 조선 최대 규모의 능역이다. 이곳에서 해설사는 능역의 구조와 제향의 의미, 그리고 능묘에 담긴 정치적 배경을 차근차근 풀어냈다. 특히, 표석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인상 깊었다. 조선 전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 돌 표지석이 송시열의 상소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왕릉 제도의 변화와 함께 예법의 엄격함, 그리고 기억을 보존하는 장치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표석에 사용된 전서체 또한 송시열의 주장으로, 제왕은 일반인과 구분되는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순종황제의 능행길은 대한제국의 비극적인 역사를 되짚어보는 중요한 여정이다. 순종은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제였다. 조선 시대 왕릉 제사는 사계절과 납일에 지내는 오향대제와 명절날 지내는 제사, 그리고 기신제로 이어졌다. 그러나 순종 황제 때인 1908년, 「향사리정에 관한 건」이라는 칙령을 통해 제사 횟수가 1년에 두 번으로 축소되었다. 이 칙령은 종묘 정전에 모셔진 왕과 왕비의 능에는 명절제와 기신제를 모두 지냈지만, 정전에 모셔지지 않은 임금과 왕비의 능에서는 명절제 한 번만 지내도록 규정했다. 명절제의 날짜 역시 혼선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기신제가 중심으로 남아 혼란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제사 전통의 단절 없는 계승은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건원릉 봉분의 억새는 태조 이성계의 유언에서 비롯된 독특한 전통이다. 태조는 생전에 고향의 억새를 무덤에 심어달라는 유훈을 남겼고, 그의 아들 태종이 이를 이행했다. 6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건원릉의 표석에는 ‘대한 태조 고황제 건원릉’이라 적혀 태조의 위상을 황제로 격상해 전하며, 이는 왕릉 제도와 예제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왕릉의 핵심 의례 공간인 정자각은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는 중심 건물로, 계단은 제물·제관·왕이 오르는 길이 구분되며, 왕이 직접 참석할 경우 신하들은 별도의 목계를 사용했다. 정자각 앞에는 혼이 다니는 신로와 제관·왕이 이용하는 어로가 분리되어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분을 상징한다.

    추존왕의 능은 생전에 왕이 아니었으나 뒤에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추존된 경우로, 정통 왕릉과는 차이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에는 호랑이와 양이 네 쌍씩 세워져 있지만, 추존왕의 능에는 절반만 배치하여 구분했다. 왕릉은 망자의 영역인 봉분이 있는 언덕과 산 자와 죽은 자가 제사를 통해 만나는 제향 공간으로 나뉘며, 이곳에는 임금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무덤의 주인을 알리는 표석이 세워졌다.

    경릉은 헌종과 두 왕비가 합장된 삼연릉으로, 조선과 대한제국의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세 기의 봉분이 나란히 배치된 사례다. 왕과 왕비의 위계는 생전과 사후에 달라지며, 삼연릉은 이러한 위계 원칙에 따라 서열대로 배치되어 있다. 삼연릉 앞에 서 있는 비석은 대한제국 시기에 새겨진 것으로, 여러 차례 다시 새겨진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석비 제작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려 했던 당시의 사정을 보여준다.

    홍릉과 유릉은 기존 조선 왕릉의 형식을 벗어나 대한제국 황릉의 양식을 따랐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왕조에서 황제국으로 체제를 전환한 것처럼, 능의 조영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석물의 배치, 봉분의 규모, 향어로의 장식은 모두 황제의 권위를 강조했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아픔이 깃들어 있었다. 홍릉 석물은 화강암 파손을 막기 위한 전통 기법이 반영되었으며, 유릉보다 작고 동물 다리가 막힌 형태로 제작되었다.

    홍릉의 비각 표석은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역사적 맥락을 담고 있다. 일본이 비문 서두에 ‘前大韓’이라는 표현을 넣자고 주장했으나, 대한제국은 ‘前’ 자를 용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이 논쟁으로 표석은 수년간 방치되었으나, 홍릉 참봉 고영근이 일본의 눈을 피해 ‘大韓高宗太皇帝洪陵 明成太皇后附左’라는 비문을 완성해 놓았다. 흥미로운 역사적 아이러니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일본에 동조하다 망명한 우범선의 아들 우장춘 박사가 귀국 후 한국 농업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홍릉과 유릉을 돌아보며 마주한 화려한 석물과 질서정연한 배치는 분명 위엄을 풍겼지만, 그 속에는 주권을 잃은 황제와 황후의 쓸쓸한 이야기가 함께 잠들어 있었다. 초등학생 참가자가 “역사학자가 되어 문화유산을 지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모습은, 이 길이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시간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갈 것인가를 묻는 자리임을 상기시켰다. 오늘날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왕릉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그 뒤에 담긴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오늘의 의미일 것이다.

  • 보이스피싱 피해, 이제 신고만으로 신속 차단 및 수사 가능해진다

    점점 교묘해지고 대규모화되는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국민적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기존의 상담 위주 대응만으로는 범죄를 예방하고 신속하게 피해를 막는 데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으며, 통신·금융 분야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범죄 특성을 고려할 때 여러 기관의 유기적인 협력이 절실한 실정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청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이하 ‘통합대응단’)’을 새롭게 출범시키며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보이스피싱 문제 해결 종합대응방안 마련 지시에 따라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수립된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의 핵심 후속 조치다. 2025년 10월 15일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에서 열린 개소식에는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와 통신·금융 관련 기업 및 협회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보이스피싱 대응을 위한 범정부적 협력을 다짐했다.

    새롭게 구축되는 통합대응체계의 가장 큰 특징은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만으로도 차단과 수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통합대응단은 금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 등 유관 부처 및 기관에서 파견된 인력이 한자리에 모여 범정부 협업의 중심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신고·제보 접수 시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금융기관 및 통신사와의 직통 회선 구축이 가능해지며,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통합대응단은 정책협력팀, 신고대응센터, 분석수사팀이라는 세 축으로 운영된다.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될 신고대응센터는 112 등으로 접수된 신고·제보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며, 계좌 지급정지, 소액결제 차단, 악성 앱 삭제 등 피해 예방 조치를 통합적으로 처리한다. 분석수사팀은 신고·제보 데이터를 심층 분석하여 전화번호 이용 중지 등 추가 피해 방지 조치를 취하고, 전국 시도경찰청 전담수사대 및 관계기관과의 긴밀한 정보 공유를 통해 범인 검거와 범죄 수단 차단에 나선다. 정책협력팀은 각 기관 파견 인력들과 함께 법령·제도 개선, 정책반영, 해외 기관과의 협력 등을 추진하며 효과적인 범죄 사전 차단 및 대응 체계 구축을 지원한다.

    특히 최근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 범죄 조직에 의한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가 포착됨에 따라, 통합대응단은 이러한 신종·변종 범죄에 대한 대응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이날 개소식에서는 총 15개 정부·공공기관 및 민간 기업·협회가 참여한 가운데, 전기통신금융사기 근절 협업 강화 업무협약(MOU)도 체결되어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과 범죄 척결을 위한 협력과 지원을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보이스피싱을 단순한 범죄가 아닌 국가적 위협으로 규정하며 통합대응단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피해 감소 효과를 내기 위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통합대응단 출범이 보이스피싱 대응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며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각 부처와 기관의 한마음 협력을 높이 평가하며, 통합대응단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꼼꼼히 챙기겠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통합대응단의 출범은 보이스피싱 범죄로부터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조선왕릉, 과거를 넘어 현재와 미래를 잇는 ‘왕릉팔경’의 가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과 궁궐이 새로운 여행 프로그램으로 일반 시민들을 맞이한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의 ‘2025년 하반기 왕릉팔(八)경’ 프로그램은 11월 10일까지 총 22회에 걸쳐 운영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유적 답사를 넘어, 왕릉과 왕릉을 잇는 길 위에서 역사의 숨결을 직접 느끼고 배우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나 높은 신청 경쟁률은 이러한 역사 체험 기회가 여전히 제한적임을 보여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조선왕릉의 가치를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이번 하반기 프로그램에는 구리 동구릉에서 남양주 홍릉과 유릉으로 이어지는 ‘순종황제 능행길’이 포함되어 대한제국 황실 관련 유적을 중심으로 탐방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이는 조선 왕실 중심의 전통적인 왕릉 탐방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근대 전환기의 역사와 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회당 참가 인원은 25명으로 이전보다 소폭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프로그램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동구릉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시작으로 선조, 인조, 문종, 경종, 영조, 추존왕 문조, 현종, 헌종 등 총 아홉 기의 왕릉이 모여 있는 조선 최대 규모의 능역이다. 이곳에서는 왕릉의 구조와 제향의 의미, 그리고 능묘에 담긴 정치적 배경까지 상세히 배울 수 있다. 특히 표석의 기원과 변화는 조선 왕릉 제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표석은 송시열의 상소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왕릉마다 해당 임금을 알 수 있는 표석을 세워 후대에 전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표석의 글씨체가 전서체로 정착된 것 역시 송시열의 주장으로, 제왕과 일반인을 구분하고 예의 엄격함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순종황제 능행길은 대한제국 황실의 역사를 따라가는 여정으로, 1908년 반포된 「향사리정에 관한 건」 칙령을 통해 제사 횟수가 축소되었던 제사 제도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칙령은 기존에 여러 차례 지내던 제사를 명절날과 기신제로 연 2회로 줄이는 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종묘 정전에 모셔진 왕과 왕비의 능에만 두 차례 제사가 모두 지내졌고, 그렇지 않은 능에서는 명절제만 지내는 등 예외가 존재했다. 또한, 명절제의 날짜 역시 한식에서 청명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이러한 역사적 혼선은 오늘날 명절제 대신 기신제가 중심으로 남아 정리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제사의 지속성은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동구릉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건원릉 봉분을 뒤덮은 억새는 태조 이성계의 유언에서 비롯된 전통이다. 생전에 고향의 억새를 무덤에 심어달라는 유훈에 따라 아들 태종이 함흥에서 억새를 옮겨와 봉분을 덮었다. 이러한 전통은 6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건원릉의 표석에 ‘대한 태조 고황제 건원릉’이라 새겨진 것은 태조의 위상을 황제로 격상해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건원릉은 봉분 주위의 병풍석, 난간석, 호랑이와 양 석상, 망주석, 곡장 등 왕릉의 전형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제향은 봉분 아래 정자각에서 올린다.

    왕릉의 핵심 의례 공간인 정자각은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는 중심 건물로, 정청과 배위청을 합쳐 부른다. 정자각 앞의 신로와 어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분을 상징하며, 축문을 태우는 예감은 영조 때부터 정착되었다. 추존왕의 능은 생전에 왕이 아니었으나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경우로, 일반 왕릉과 달리 석물의 배치가 절반만 이루어지는 등 차이가 존재한다. 신도비는 임금의 업적을 기록하는 비석으로, 건원릉, 태종 헌릉, 세종 영릉 등 일부에만 남아 있다.

    경릉은 헌종과 두 왕비(효현왕후·효정왕후)가 모셔진 삼연릉으로, 세 기의 봉분이 나란히 배치된 유일한 합장 형식의 사례이다. 이곳의 비석은 대한제국 시기에 새겨졌으며, 여러 차례 다시 새겨진 흔적을 통해 당시의 경제적 부담과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홍릉과 유릉은 기존 조선 왕릉의 형식을 벗어나 대한제국 황릉의 양식을 따르며, 석물의 배치, 봉분의 규모, 향어로 등의 장식에서 황제의 권위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함 속에는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아픔이 깃들어 있다.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조선왕릉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현재 세대가 이해하고 미래 세대가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초등학생 참가자의 포부처럼, 이러한 문화유산을 지키고 계승하려는 노력은 과거를 되짚는 것을 넘어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세계유산으로서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왕릉팔경’ 프로그램이 지닌 진정한 오늘의 의미이다.

  • 작은 글씨 고민 끝… ‘화장품 e-라벨’로 정보 접근성 높인다

    화장품 패키지에 깨알같이 적힌 작은 글씨들로 인해 소비자들이 제품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특히 염색약과 같이 사용 전 유의사항이나 성분 확인이 중요한 제품의 경우, 작은 글씨로 인해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상황은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가중시켜 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행정안전부는 ‘화장품 e-라벨’이라는 새로운 모바일 정보 제공 사업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화장품 e-라벨’은 제품에 필수적으로 표기해야 하는 정보를 디지털 라벨 형태로 제공하는 정책이다. 소비자는 이제 제품 패키지에서 직접 작은 글씨를 읽는 대신, QR코드를 스캔하여 휴대폰으로 화장품에 대한 상세 정보를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제품명, 제조 번호, 사용기한 등 소비자가 자주 찾는 정보는 확대된 글씨로 제공되며, 안전 정보, 사용법, 성분 등 분량이 많은 추가 정보는 QR코드 스캔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정보의 가독성과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또한, 패키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포장지 자원을 절약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어 친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사업은 2024년 3월 1차 시범 사업을 시작으로, 올해 3월부터 내년 2월 말까지 2차 시범 사업이 진행 중이다. 1차 시범 사업에서 19개 제품을 대상으로 긍정적인 소비자 피드백을 받은 결과, 2025년에는 염모제, 탈염 및 탈색용 샴푸 등 제품군을 대폭 확대하여 13개사 76개 품목으로 시범 운영을 넓혔다. 이는 기존에 패키지에 모든 정보를 텍스트로 표기해야 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제품명, 영업자 상호, 용량, 제조 번호, 사용기한 등 필수 정보만 겉면에 표기하고, 보관법, 품질 특성, 기능성화장품 표시, 제조 성분 등 부가적인 모든 정보를 e-라벨 안에 담는 방식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까지 좁은 면적에 모든 필수 정보를 담아 가독성이 떨어졌던 문제점을 해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 e-라벨’은 디지털 취약 계층을 위한 음성변환 기능(TTS) 도입까지 예정하고 있어, 정보 접근성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QR코드만 있다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화장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됨으로써, 소비자들이 제품 선택 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고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정보를 더욱 쉽고 정확하게 습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화장품과 같이 민감한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줄이고, 더욱 안전하고 현명한 소비를 돕는 중요한 솔루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