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2000년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발표된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주도적 의지를 밝히며 남북 간 경제협력, 냉전 종식, 이산가족 상봉 등을 골자로 했다. 이 선언은 석 달 뒤 남북 정상 간 역사적인 ‘6.15 공동 성명’ 발표로 이어지며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트는 촉매 역할을 했다. 그러나 25년이 흐른 지금, 남북관계는 완전한 단절 상태에 이르렀고 역사는 퇴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정부 3년간 지속된 적대와 대결 정책은 남북 화해 협력의 기초를 파괴했으며, 자유의 북진론과 흡수 통일론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에 북한은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기에 이르렀고, 최근 김정은 위원장 역시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두 국가’를 강조하며 남북관계의 ‘적대성’을 상세히 언급했다. 남북 간 적대성이 지속된다면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는 긴장과 불안, 그리고 ‘코리아 리스크’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며, 동북아와 국제사회의 평화 역시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현상에 대한 소극적인 방치가 아닌, 한반도 평화 공존을 위한 현상 변경과 변화를 모색하고 결단할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동서독 역사의 물길을 화해와 협력으로 돌리고 분단을 극복해 낸 동서독의 경험에서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동서독이 ‘두 국가’의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평화의 발걸음을 뗀 것이며, 둘째는 일관성 있는 접촉과 경제 교류를 유지하면서 평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 것이다. 냉전 절정기 동독은 서독의 1민족 1국가론에 대항하여 2국가론, 나아가 2민족론을 주창하며 자국의 독립성과 국가성을 주장하고 ‘통일 불가능론’을 내세웠다. 이에 서독은 동독을 ‘외국이 아닌’ 특수 관계로 규정하면서도, 동독의 ‘국가성’을 사실상 인정했다. 동독의 국제법적 실체를 인정함으로써 화해·협력의 제도화를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고, 이후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되었다. ‘동서독 기본조약’은 정상적인 선린 관계 발전, 국경 불가침성 재확인, 국제 무대에서의 독립성 보장 등에 합의했다. 이러한 ‘국가성’ 인정은 두 독일 체제를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이후 동방 정책의 본격적인 추진을 통해 동서독 간 교류 협력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토대가 되었다. ‘기본조약’ 체결 이후 동서독은 다방면의 실질적 협력을 급속히 발전시켰으며, 이는 서독 내 정권 교체 상황에서도 일관성 있게 유지되었다. ‘기본조약’ 7조를 통해 경제, 과학, 기술, 교통, 법적 거래, 우편, 통신, 의료, 문화, 스포츠, 환경 보호 분야에서의 협력 발전을 합의했다. 특히 경제 교류로 인해 동서독 간 접촉면이 전방위로 확대되었고, 긴장 완화와 대립 관계 극복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예를 들어 서독 폭스바겐은 동독에 엔진 생산 설비를 투자하고 생산된 엔진을 다시 서독으로 반입하는 사업을 추진했는데, 이를 통해 동독은 고용 창출, 기술 이전, 자동차 산업 현대화의 이익을 얻었고 서독 폭스바겐은 차량 생산 단가를 낮춤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동서독 간 경제 교류 확대 속에서 상호 이해의 폭도 넓어졌으며, 평화가 경제를 더욱 안정시키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동방 정책은 일관되게 추진되었고, 실용성과 성과는 정권 교체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계승되었다. 꾸준히 이어져 온 동서독 간 경제 교류의 성과는 통일 이후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바탕이 되었다고도 평가된다. 작년 9월 독일 연방정부의 ‘독일 통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경제 전체가 정체된 가운데 두 개의 동독 연방주가 경제 성장률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서독이 걸었던 화해와 협력의 길을 기억하며, 우리 정부는 한반도 평화 공존, 공동 성장의 미래를 위한 노력을 경주해 갈 것이다. 첫째,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출발점은 남북이 오랜 기간 한반도에 사실상의 ‘두 국가’ 형태로 존재해 온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관계의 초점을 ‘적대성’에서 ‘평화’로 바꾸는 것이다. 동서독의 두 국가론이 평화 공존의 시대를 열었던 역사를 상기하며, 한국에서는 이미 1,400년 전 통일신라 시대 고승 원효대사가 가르친 ‘불일불이(不一不二)’, 즉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는 사상이 한반도의 현실과 미래를 압축적으로 설명해준다. 지금은 하나가 아닌 둘이지만, 미래에는 둘이 아닌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적인 사실상의 두 국가 형태는 전례 없는 제안이 아니며, 우리 정부가 국제 규범, 남북 간 합의, 공식 통일 방안에서 30년 이상 일관되게 유지하고 지향해 온 과제다. 남북은 1991년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 독립된 두 유엔 회원국으로서, 국제법적으로 주권을 존중받는 두 국가로 인식되어 왔고, 회원국의 주권 평등, 영토 보전을 명시한 유엔 헌장을 함께 준수할 의무를 갖고 있다. 또한 남북은 같은 해 ‘남북 기본 합의서’를 통해 ‘상호 체제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한다’, ‘내부 문제 불간섭한다’를 약속한 바 있다.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의 2단계인 ‘남북 연합’ 단계는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공존 공영하면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단계로, 이는 사실상의 ‘평화적 두 국가’를 의미한다. 통일을 지향하면서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과도기적 단계로서, 통일 지향의 특수 관계에 기반한 ‘평화적 두 국가’는 평화 공존의 시대를 열기 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적인 결단이다. 이는 남북 간 합의와 국제 규범을 함께 지켜나가자는 원칙의 표명이다. 지난 정부의 ‘강 대 강’ 대결 정책은 대북 정책에 대한 북한의 뿌리 깊은 불신을 초래했으며, 북한은 우리 정부가 언제든지 북한 체제를 부인하고 흡수 통일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평화적 두 국가’는 대한민국 정부가 먼저 남북 간 합의 준수, 그리고 국제 규범 준수를 통해 북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약속이다. 남북이 화해 협력의 파트너로서, 동등한 유엔 가입 회원국으로서 상호 협력을 증진해 나가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은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과 적대 행위의 악순환을 끊어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8.15 경축사와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첫째,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둘째, 흡수 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일체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3원칙을 거듭 천명한 바 있으며, 이러한 상호 인정과 존중의 원칙이 우리 정부 대북 정책의 기조가 될 것이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한마디로 설명한 것처럼, “우리는 북한을 흡수 통일하거나 해칠 생각이 없다. 그러니 안심하고 협력해 가자”는 선언과 같다. 우리는 한반도의 갑작스러운 통일을 기대하거나 원하지 않으며, 통일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이 의심하는 독일식 흡수 통일은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길이 아니다. 북한은 정치적 실체가 있는 국가이며, 동독과 북한은 조건과 성격이 다른 국가다. 동독은 사실상 소련의 위성 국가였으며, 냉전 해체기에 스스로 무너져 내렸으나, 현실적으로 한반도에서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은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할 시간이며, 적대가 아닌 평화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대화와 접촉, 교류의 재개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우리 정부는 남북 간 대화와 소통을 복원하고,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교류 협력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 총회 기조 연설을 통해 발표한 ‘E.N.D’ 이니셔티브는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중심으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하고,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구상이다. 교류, 협력이야말로 평화의 지름길이며, 남북은 이미 화해와 협력의 역사를 써 내려온 경험을 갖고 있다. ‘6.15 남북 공동 선언’ 이후 남북 간 인적, 물적 교류는 이산가족, 역사, 문화, 종교 등 다방면에서 진행되었다. 개성 공단, 금강산 관광,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3대 경협 사업으로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이루어낸 바 있다. 개성 공단에서는 5만 5천 명의 남북 근로자가 함께 근무했고, 금강산에는 200만 명이 다녀왔다. 이는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다시 시작해야 할 가슴 뛰는 성과다. 독일 통일의 설계자로 불리는 에곤 바르 박사는 개성 공단에 대해 “동독에 서독의 공단을 설치하는 개성 공단 같은 발상을 할 수 있었다면 통일 이후 과정이 굉장히 순조로웠을 것”이라고 감탄한 기억이 난다. 남북 공동 성장의 천리 길을 향한 한 걸음을 뗄 수 있도록, 정부는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부터 시작할 것이다. 남북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호혜적 교류 협력의 기반을 회복하면서, 평화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경제가 다시 평화를 공고하게 하는 한반도 평화 경제의 미래를 구상해 나갈 것이다.
그간 남북 간 ‘강 대 강’ 대결의 시간으로 인해 쌓여온 불신과 긴장의 벽은 아직도 높다. 그러나 독일 속담처럼 “모든 시작은 어렵습니다.(Aller Anfang ist schwer)” 하지만 시작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평화의 시대를 향한 대전환을 이루어내기 위해, 우리 정부는 지금 할 수 있는 평화의 조치부터 꾸준하고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다. 20년 전 정치적 재충전을 위해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한 학기를 보내며 포츠담에 살았던 경험을 떠올리면, 매일 집 근처 체칠리엔호프 궁전 광장을 돌면서 트루먼과 스탈린, 애트니를 생각하게 된다. ‘적절한 시점에 자유롭고 독립된 조선이 될 것이다’라는 포츠담 선언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소련의 대일 참전을 핵심으로 한 포츠담 합의는 소련의 한반도 진공을 허용하면서 결과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미소 전략 경쟁의 장으로 이동시킨 전환점이자 분단의 기원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제 한반도는 과거 강대국들의 임시적이고 편의적인 결정에 따라서 정해진 적대적 분단의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평화 공존과 평화 통일의 길을 개척해 갈 용기를 가져야 할 때다. 동서 냉전의 절정기였던 1960년대 후반 당시 베를린 시장이었던 브란트 수상은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냐, 만나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 먼저 작은 발걸음 정책, 접촉을 통한 변화, 동방 정책을 시작해보자”는 구상을 했다. 브란트 수상의 그런 고심처럼 분단 80년 우여곡절 끝에 다시 남북 적대 관계로 추락한 한반도에서 해야 할 일은 우선 만나고, 만나서 평화 공존의 길을 열어나가는 것이다. 독일이 걸었던 평화와 화해 협력의 길에 남과 북도 함께 설 수 있도록, 평화 문제의 전문가인 여러분께서 깊은 통찰과 해법을 제시해 주시는 귀한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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