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국가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함께 실학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시기, 개혁과 개방의 방법론을 제시한 박제가의 『북학의』 고본이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되며 그 역사적, 서지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번 국가유산청의 보물 지정은 단순히 한 권의 서적이 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것을 넘어, 당시 조선 사회가 직면했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식인들의 치열한 노력을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학의』는 1750년에서 1805년까지 활동했던 실학자 박제가(朴齊家)가 1778년 청나라 북경을 다녀온 후 저술한 책으로, 국가 제도와 경제 전반에 걸친 실질적인 개혁 방안을 담고 있는 지침서다. 내편에서는 각종 기물과 장비의 개혁을, 외편에서는 제도와 정책의 개혁을 제안하며 당시 조선 사회의 낙후된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이러한 『북학의』의 탄생 배경에는 수탈과 모순으로 얼룩진 조선 후기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백성을 위한 진정한 개혁과 국가의 부흥을 위해서는 서양의 과학 기술과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통상 개방을 추진해야 한다는 박제가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박제가 고본 북학의」는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려는 박제가의 고민이 집약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작성 시기가 초기본에 가장 가깝고 박제가 본인이 직접 쓴 친필 고본(稿本)이라는 점에서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다른 사람의 필사본들이 저본(底本)이 되어 자료의 신뢰성을 더하며, 책 곳곳에 표시된 첨지(籤紙)의 주석과 의 첨삭 은 박제가가 『북학의』의 을 수정하고 보완하며 완성해나간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북학의』에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박지원(朴趾源)의 친필 서문(序文)이 함께 남아 있어, 두 시대적 인물의 정신이 교감하는 희소한 사례를 보여준다. 『북학의』가 조선 후기 사회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 고본의 지정은 실학 사상의 발전과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이처럼 「박제가 고본 북학의」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결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물이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보물 지정을 통해 「박제가 고본 북학의」가 더욱 체계적으로 보존 및 활용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개혁 사상의 정수가 담긴 이 책이 미래 세대에게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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