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25차 한-아세안 정상회의는 한국과 아세안이 단순한 협력 관계를 넘어 최고 수준의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바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SP)’ 수립을 통해서다. 이는 한국과 아세안이 대화 관계 수립 35주년을 맞아 협력의 깊이를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CSP는 아세안이 대화상대국과 맺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파트너십으로, 주로 대화상대국의 제안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은 2022년 CSP 수립을 공식 제안한 지 2년 만에 호주, 중국, 미국, 인도, 일본에 이어 아세안과 CSP를 수립하는 여섯 번째 국가가 되는 것이다.
CSP 체결 자체만으로 다른 대화상대국에 비해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아세안의 입장에서 CSP는 대화 관계의 성숙도를 상징적으로 인정하는 의미이며, 대화상대국 간의 서열을 나누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SP 수립은 한국과 아세안이 최고 수준의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CSP 체결은 한-아세안 협력이 더욱 깊어졌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계기이며, 한국이 아세안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아세안은 지역 내 힘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며 대화상대국과의 관계 관리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단순히 대화상대국의 요청만으로 CSP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과거 중국이 CSP를 처음 제안했지만, 아세안이 가장 먼저 CSP를 체결한 국가는 호주였다. 이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아세안의 고심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아세안이 한국의 CSP 수립 제안을 받아들인 배경에는, 아세안이 직면한 도전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지난달 필자가 자카르타에서 만난 아세안 현지 전문가들 역시 미중 경쟁 심화 속에서 공급망 및 과학·기술 분야의 핵심 협력 파트너로 한국을 강조한 바 있다.
둘째, CSP 수립은 상징적 의미를 넘어 한-아세안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세안은 CSP를 제안한 대화상대국에게 기존보다 더욱 ‘의미 있고 실질적이며 상호호혜적인’ 협력 관계를 요구해 왔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CSP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120대 협력 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120대 과제는 ‘한-아세안 연대 구상’ 차원에서 이미 추진 중인 사업들과 아세안의 요청을 반영한 신규 사업들로 구성된다. 특히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인구구조 변화 대응 등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촉진하는 과제들이 다수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아세안은 현재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중요한 도전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경험과 기술력은 아세안이 디지털 경제 성장을 가속화하고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 구조를 가진 아세안과의 인적 교류 확대는 한국이 겪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불어 미중 경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아세안과의 안보 협력 확대는 역내 안정을 유지하고 다양한 비전통적·신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향후 과제는 이번 CSP 수립을 계기로 한-아세안 간의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더욱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2025년은 아세안이 ‘공동체 청사진 2025’의 이행 결과를 최종 점검하고, 후속 비전인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를 채택하는 중요한 해다. 또한, 2025년은 한국과 아세안이 CSP 추진을 위한 새로운 행동계획(Plan of Action 2026-2030)을 마련하는 해이기도 하다. 이번 정상회담이 한-아세안 간 미래지향적 협력의 굳건한 기틀을 다지고, 양측 관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실질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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