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경제적 안정만큼이나 부부의 화목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으나, 많은 퇴직 남성들이 집에 머무르면서 아내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남편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며, 중년·황혼 이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퇴직이라는 인생의 큰 변화 앞에서 부부 각자가 고립된 세계에서 나와 서로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예상치 못한 갈등과 불화가 가정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
퇴직 후 집에 머무르는 남편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부 갈등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심각한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고위직 공무원이었던 한 인물의 퇴직 수기에서 알 수 있듯,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까지 받는 공무원들조차 퇴직 후 ‘절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을 느끼며 갈 곳 없는 답답함을 호소한다. 특히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내의 눈치를 보거나, 별다른 활동 없이 집안에만 있는 상황에 대한 불편함은 많은 퇴직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이러한 상황은 아내에게도 마찬가지로, 퇴직한 남편의 일상적인 수발을 들어야 하는 부담감과 더불어 서투른 집안일이나 잔소리로 인해 짜증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이러한 퇴직 후 부부 갈등 문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어 왔다. ‘남편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퇴직한 남편이 집에 머무르는 것이 아내에게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안겨주며 우울증, 고혈압, 암 공포증 등 다양한 건강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부원병(夫源病)’, 즉 남편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병이라고 부를 정도이다. 이러한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부부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부부가 현역 시절 각자의 세계에 살며 배우자의 사정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습관이, 퇴직 후 남편이 집에 상주하면서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아내가 그동안 자신만의 삶을 꾸려왔던 세계에 남편이 갑자기 매일 존재하게 되면서, 이전에는 신경 쓰이지 않았던 남편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이 아내에게는 큰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난 20여 년간 전체 이혼 건수는 감소 추세지만, 혼인 지속 기간 20년 이상인 중년·황혼 이혼의 비율은 1990년 14%에서 2023년 23%로 크게 증가했다. 이 중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역시 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지난 20여 년간 전체 이혼율은 낮아졌지만 중년·황혼 이혼의 비율은 1990년 5%에서 2023년 36%로 급증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퇴직 후 남편과 아내 간의 갈등 문제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언론 보도나 노후 설계 강의 현장에서도 퇴직 후 부부 갈등에 대한 고민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노후 설계 전문가들은 퇴직을 앞둔 부부들에게 퇴직 후 부부 화목을 위한 특별한 노력을 당부하고 있다. 특히 낮 동안에는 부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일본의 노후 설계 전문가 오가와 유리 씨는 퇴직 후 가장 인기 있는 남편은 집안일을 잘 돕거나, 건강하거나, 요리를 잘하거나, 상냥한 남편이 아니라 ‘낮에는 집에 없는 남편’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남편의 부재가 오히려 부부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퇴직 후의 삶에서 경제적 안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부부의 화목임을 인식하는 것이 시급하다. 부부 모두가 은퇴 이후 낮 시간을 활용하여 수입을 얻는 일, 사회 공헌 활동, 취미 활동 등 각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부부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각자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남편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을 예방하고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연구회 대표, 전 미래에셋 부회장
대우증권 상무, 현대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 시절, 일본의 고령화 문제를 직접 경험하며 노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품격 있는 노후 설계를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연구하고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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