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울산의 경제를 이끌었던 고래잡이 산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장생포 지역은 깊은 상실감을 안고 있었다. 1986년 상업 포경 금지 이후, 한때 활기 넘쳤던 항구 도시는 그 영광을 뒤로하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도시의 아쉬움과 사라진 생업에 대한 향수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겨지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현재와 미래를 잇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제는 사라진 고래 산업의 흔적을 복원하고, 그 역사와 문화를 재해석하여 도시의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울산 남구청은 2016년 폐허가 된 냉동창고 건물을 매입하고,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2021년 ‘장생포문화창고’를 개관했다. 이곳은 단순히 과거의 산업 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지역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자 시민들이 자유롭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총 6층 규모의 건물에는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 등 지역 문화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뿐만 아니라, 특별 전시관, 갤러리, 상설 미디어 아트 전시관까지 마련되어 방문객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2층 체험관에서는 ‘에어장생’이라는 고래 캐릭터를 활용한 항공 체험 프로그램과 종이 고래 접기 등 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흥미로운 놀거리들을 제공하며, 오는 8월 24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회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감각으로 경험하게 하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이러한 문화 공간의 조성은 과거의 흉터로 남을 수 있었던 냉동 창고 건물을 업사이클링하여 시민들을 위한 공공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장생포문화창고가 지닌 의미는 2층 상설 전시 중인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곳은 울산이 대한민국의 산업 심장부로 발돋움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중화학공업 발전의 역사와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980년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했던 온산병과 같은 중금속 중독 질환의 아픔까지도 솔직하게 조명하며, 과거의 영광과 그림자를 함께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장생포의 고래 산업 역시 재조명된다. 선사시대부터 고래가 서식하던 깊은 바다, 동해와 남해의 교차점이자 풍부한 먹거리가 풍부한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발전했던 포경 산업은 1946년 최초 조선포경주식회사의 설립과 함께 본격화되었다. 비록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결정으로 상업 포경이 전면 금지되면서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장생포 고래잡이의 영광은 막을 내렸지만, 현재까지도 장생포에서는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혼획된 고래고기를 통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래고기는 장생포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이 있듯,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은 고래고기를 더욱 특별한 대상으로 만들며, 사라진 산업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12만 원에 달하는 ‘모둠수육’은 육고기와 흡사한 모습으로, 살코기, 껍질, 혀, 염통 등 부위마다 전혀 다른 식감과 맛을 선사하며 ‘일두백미’에 비견되는 다채로운 미식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우네’와 ‘오배기’와 같은 고급 부위는 고래 특유의 풍미를 극대화하며, 과거 장생포에서 꿈을 꾸었던 어부들과 6.25 전쟁 피란민,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으로 자리매김한다.
결론적으로,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단순한 식사 공간을 넘어, 사라진 산업과 생업, 그리고 포경선의 향수를 담아 과거를 애도하고 회상하는 의례적인 장소로 기능한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 고래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하는 의미있는 과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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