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노후자금 마련만큼이나 부부 화목이 중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인해 부부 갈등이 심화되고, 이는 이혼으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여 년간 전체 이혼 건수에서 차지하는 중년·황혼 이혼의 비율이 1990년 5%에서 2023년 36%로 급증한 배경에는 퇴직 후 발생하는 부부 갈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퇴직한 공무원들의 퇴직 수기 공모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105건의 수기를 읽고 놀랐다고 전했다. 60세 정년 보장과 연금 수령으로 특별한 걱정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대부분의 수기 이 ‘퇴직하고 나니 절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갈 곳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혔다. 한 고위직 공무원의 경우, 퇴직 후 3개월간 집에 머물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 오히려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아침마다 아내의 눈치를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으며, ‘저 양반은 오늘도 안 나가나?’라는 시선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취업을 시도했지만 준비 부족으로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하다가, 최근 늘고 있는 주간노인보호센터의 일자리에 지원하여 월 70만원의 급여와 건강보험료 30만원 절약을 통해 월 100만원을 벌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무섭던 아내가 천사로 바뀌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퇴직한 남편과 아내 사이의 갈등 문제는 TV 토크쇼에서도 자주 다뤄지는 주제이다. 참여자 대다수는 퇴직한 남편이 낮에 집에 머무는 것에 대해 남편과 아내 모두 불편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여성들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부담감과 속박감을 느꼈으며, 서투른 집안일과 잔소리에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남성들은 아내에게 힘들어하는 눈치를 보이는 것이 불편했고, 집안일을 돕다가 사소한 실수로 핀잔을 들으면 화가 나고 서글픔까지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20여 년 앞서 고령 사회를 경험한 일본에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퇴직 후 남편의 존재가 아내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건강 이상으로 이어지는 ‘남편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유행했으며, 이는 ‘부원병(夫源病)’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으로는 커플 문화를 가진 미국과 달리, 한국과 일본은 남편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동안 부부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남편은 회사일에, 아내는 가정일에 집중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왔지만, 남편이 퇴직하면서 이러한 분리된 세계에 갑작스러운 침입이 발생하게 된다. 퇴직 전에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만 집에 있던 남편이 매일 집에 있게 되면서, 이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남편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이 아내에게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혼 건수와 이혼율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혼인 지속 기간 20년 이상의 중년·황혼 이혼 비율은 1990년 14%에서 2023년 23%로 증가했다. 성격 차이, 경제 문제, 배우자의 외도와 더불어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중년·황혼 이혼의 중요한 계기로 등장했다는 점은 남편 입장에서는 어이없게 느껴질 수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의 노후 설계 전문가들은 퇴직을 앞둔 부부들에게 퇴직 후 부부 화목을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조언하고 있다. 특히 낮 동안에는 가능한 한 부부 각자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한 일본 노후 설계 전문가는 퇴직 후 가장 인기 있는 남편의 조건으로 ‘낮에는 집에 없는 남편’을 꼽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시 남편 퇴직 후 부부 갈등 문제가 빠르게 사회 문제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 부부들이 퇴직 후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충분히 준비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수 있다. 따라서 퇴직 후 노후자금만큼이나 부부 화목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부부 모두 낮 동안에는 수입을 얻는 일이든, 사회공헌활동이든, 취미 활동이든, 혹은 이 세 가지를 겸한 활동이든, 각자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연구회 대표, 전 미래에셋 부회장
대우증권 상무, 현대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로 일하고 있다.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 시절, 현지의 고령화 문제를 직접 마주하면서 노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품격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다양한 설계 방법을 공부하고 설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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