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원전 산업 생태계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서, 신한울 3,4호기 착공은 침체되었던 산업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신규 원전 건설을 넘어, 지난 10월 30일 준공식을 가진 신한울 1,2호기와 함께 우리나라 원전 기술력의 결정체를 보여주는 성과이며, 동시에 국제적인 에너지 전환 흐름 속에서 원전의 역할을 재조명하게 하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국내 원전 산업은 마치 목마른 상태와 같았다. 그러나 2022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동향을 읽은 정부의 발 빠른 정책 전환이 이러한 어려움에 희망의 물꼬를 텄다. 이러한 전환은 우연이 아니다. 2020년 7월,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마지막 기회’라는 제명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인류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서 2022년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원전을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 친환경 에너지에 포함하는 택소노미 개정을 결정했으며, 같은 해 6월 뉴욕타임즈는 ‘원전 르네상스’의 도래를 알리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는 세계 에너지 전환의 흐름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특히, 유럽연합이 2020년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며 제외했던 원전을 2년 만에 다시 포함시킨 것은, 원전 없이는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결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에 가장 적극적인 지역인 유럽에서도 원전 없이는 지속가능한 탄소 감축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풍부한 풍력 자원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를 추진하는 영국은 일찌감치 원전을 탄소중립의 중요한 수단으로 설정하고 원전 산업 기반 확보에 힘쓰고 있다. 스웨덴은 수력 및 풍력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정책을 접고 2050년까지 10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35%의 전력을 원전으로 공급하는 스위스 역시, 2017년 신규 원전 건설 금지를 결정했었지만, 이제는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탈원전의 선두 국가 중 하나인 이탈리아마저도 소형모듈원전(SMR)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유럽은 세계 최대의 원전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스웨덴의 10기를 비롯하여 네덜란드 4기, 폴란드 6기, 체코 4기 등 다수의 유럽 국가에서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영국은 1GW급 원전 24기 분량을 추가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1~2기의 원전을 추가하려는 유럽 국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체코는 유럽 원전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수주한 첫 번째 사례로, 15년 전 UAE 수주에 이어 이번에도 승리함으로써 세계 원전 르네상스를 이끄는 견인자로 떠올랐다. 이는 2022년 폴란드가 정부 간 협약이 아닌 입찰 경쟁을 통해 3기의 원전을 발주한 것과 비교했을 때 더욱 의미 있는 성과다.
해외에서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원전 기술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신한울 1,2호기는 우리나라 원전 산업 기술의 결정체로서, 그동안 우리 기술로 자립하지 못했던 원자로 펌프, 제어 시스템 등을 모두 국산 기술로 대체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또한, 신한울 3,4호기는 탈원전 정책으로 침체되었던 우리 원전 산업 생태계에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1972년 고리 1호기 도입 이래 꾸준히 진행해 온 기술 개발과 더불어, 2년에 1기꼴로 원전을 건설해 온 산업 생태계의 유지 덕분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국내에 12기, 해외에 4기의 원전을 건설하며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 비견될 만한 공급망, 설계, 제작, 건설 기술을 확보했다. 만약 탈원전 정책이 지속되었다면 이러한 산업 기반이 자칫 잃을 뻔했던 상황을 고려할 때, 2024년 10월 30일의 신한울 1,2호기 준공과 신한울 3,4호기 착공 기념식은 우리나라 원전 산업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 원전 산업은 다음 목표로 네덜란드 시장에 도전할 것이다. 네덜란드는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한 프랑스, 미국 등에게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원전 르네상스는 분명 큰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위기도 동반한다. 기회는 세계 원전 시장 확대라는 외부 요인이지만, 위기 요인은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 현재 세계 원전 시장은 한·미·프 삼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이번에 승리했다고 해서 다음에도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다.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더욱 기술을 연마하고 ‘팀 코리아’의 결속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 역량을 결집해야 할 시점에 체코 원전 사업을 힐난하는 것은, 외부에 쏟아야 할 노력을 국내 대응에 소모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K-원전은 우리 청년 세대에게 또 하나의 자부심이 될 수 있으며, 지금 우리는 우리 청년들이 유럽의 청년들에게 유럽의 탄소중립을 이끄는 K-원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만들어 줄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K-원전이 세계 원전 르네상스를 이끌도록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