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문화/생활

  • 전국적인 ‘평범한 국’이 지역 최고 음식으로 변모한 까닭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콩나물국은 ‘요리’로 인식되지 않는다. 흔히 식당에서 기본 백반 메뉴에 곁들여 나오는 국으로, 때로는 실망감을 안겨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가격이 저렴한 콩나물을 사용하고 별다른 건더기가 없어 맛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콩나물국이 지역의 대표 음식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라북도, 특히 전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콩나물국밥이 단순한 한 끼 식사를 넘어 지역의 최고 음식으로 자리매김하며 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는 콩나물국밥이 가지는 독특한 지역적 변주와 그 속에 담긴 환대의 문화 덕분이다.

    이러한 콩나물국밥의 높은 위상은 지역 특유의 음식 문화에서 비롯된다. 전라북도의 콩나물국밥은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일반적인 국과 달리, 지역마다, 가게마다 미묘하게 다른 조리 방식과 제공 방식을 자랑한다. 이곳에서는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주문하는 것부터 특별한 경험이 된다. 수란과 날계란 중 선택하는 것, 오징어 첨가 여부, 밥을 국물에 말아 나오는 토렴 방식인지 따로 나오는지 등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이는 마치 중국집의 짜장면이나 짬뽕처럼, 지역마다 고유의 특징을 살려 발전해 온 음식의 속성을 보여준다. 전국적인 통일된 양식이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해 온 음식은 오히려 그 자체로 맛의 다양성을 확보하며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인다.

    특히 전주 남부시장의 콩나물국밥집은 이러한 지역적 특색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장이 손님 앞에서 직접 마늘과 매운 고추를 다져 넣는다. 미리 썰어둔 재료를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갓 다진 재료가 만들어내는 신선한 향은 콩나물국밥의 맛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손님과의 교감과 정성을 담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전주뿐만 아니라 익산, 군산 등 전북 지역 곳곳에서 콩나물국밥으로 명성을 얻은 가게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은 이 음식이 얼마나 깊숙이 지역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비록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의 선택지가 다양해지고 음주 문화의 변화로 인해 과거만큼의 폭발적인 인기는 아닐지라도, 전북 지역을 방문했을 때 콩나물국밥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외지인에게 음식을 안내하는 과정에서 서로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독특한 문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맛있는 콩나물국밥집을 묻는 질문에 택시 기사들이 즉답을 망설이는 것은, 그만큼 지역 내에 훌륭한 콩나물국밥 명가와 신흥 강자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콩나물국밥이 단순한 음식을 넘어 지역의 자부심이자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 100만 년 제주의 시간, 용머리해안과 고사리해장국에 담기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인기와 함께 봄날 제주를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나, 과거와 달리 관광객 감소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 수요 증가로 인해 제주를 향하는 발길이 줄면서, 국내 여행 1번지로 불리던 제주의 위상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높은 물가와 같은 기존 이슈들이 이러한 흐름에 더욱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주의 숨겨진 가치를 재조명하고, 잃어버린 관광객들의 관심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제주가 품은 100만 년의 시간과 그 속에 깃든 토착 문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유산으로 ‘용머리해안’이 주목받고 있다. 용머리해안은 로컬100에 이름을 올린 제주의 소중한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제주도민조차 그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용머리해안의 진정한 매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를 맞추는 것이 필수적이며, 기상 상황에 따라 출입이 통제될 수도 있어 방문 전 관광 안내소에 입장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용머리해안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땅으로서, 약 100만 년 전 얕은 바다에서의 화산 폭발로 형성된 독특한 지질학적 특성을 자랑한다. 화산 분출의 간헐성과 화산재의 이동으로 인해 세 방향으로 쌓인 화산재 지층은 용암과 바다가 빚어낸 장엄한 풍경을 선사한다. 파도에 깎여나가고 다시 쌓인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마치 태곳적 제주를 만나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검은 현무암과 옥색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 움푹 파인 굴방과 드넓은 침식 지대는 100만 년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한다. 또한, 용의 머리 형상에서 유래한 지명처럼, 제주의 영험한 기운을 담은 이곳은 역사 속 이야기와 더불어 자연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경관을 선사한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겸손해지는지를 깨닫게 하는 용머리해안 탐방의 여정은, 제주 땅의 숙명과도 같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탄생한 ‘고사리해장국’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논농사가 어려웠던 제주에서 고사리와 메밀은 오랜 시간 지역민들의 주된 식량원이었다. 특히 고사리는 척박한 화산암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빗물을 저장하는 강인함으로 제주 생태계의 시작이자 식재료의 시작을 알렸다. 독성이 있지만 오랜 조리 과정을 거쳐 본연의 맛을 살린 고사리는 제사상에도 오를 만큼 귀한 식재료였다.

    이러한 고사리를 활용한 고사리해장국은 제주 사람들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았다. 돼지를 가축으로 주로 키웠던 제주에서 돼지뼈로 우려낸 육수에 고사리와 메밀가루를 더해 끓여낸 고사리해장국은 걸쭉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메밀 전분 덕분에 걸쭉하면서도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국물 맛은 제주의 사투리 ‘베지근하다’는 말로 표현될 만큼 깊고 담백하다. ‘베지근하다’는 고기 따위를 푹 끓인 국물이 구미를 당길 정도로 맛있으며,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깊은 맛을 의미한다. 밥 한 공기를 말아 먹으면 죽처럼 되직해져 더욱 든든하게 즐길 수 있는 이 음식은,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삶의 지혜와 풍미를 잃지 않았던 제주 사람들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용머리해안과 고사리해장국, 이 두 가지는 100만 년의 시간과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제주가 품어온 고유한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용머리해안의 장엄한 자연과 고사리해장국의 담백하고 유순한 맛은 제주의 현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제주의 진정한 매력을 다시금 발견하고, 잃었던 관광객들의 발길을 되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한류, ‘불리는 이름’에서 ‘진정한 여행’까지: 끝나지 않은 성장의 여정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확산 현상인 ‘한류’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적 실체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그 근본적인 배경에는 ‘명명과 인식’의 과정이 존재했다. 과거에는 지나가는 바람처럼 인지되던 한국 드라마나 K팝이 세계인들의 입을 통해 ‘한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구체적인 실체를 얻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김춘수의 시 ‘꽃’에서 이름이 불리기 전에는 단순한 몸짓에 불과했던 존재가, 이름이 불림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꽃으로 인식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즉, 한류는 더 이상 낯선 현상이 아닌, 세계가 인지하고 관계 맺으며 부여한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문화적 주체로 탄생했다. 이는 학계에서 진단하듯 한류가 단순히 콘텐츠를 ‘전파’하는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라,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수용’되는 역동적인 결과물임을 시사한다. ‘불리는 이름’은 관계의 시작점이며, 한류는 이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더욱이, 현재의 한류는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분단과 동족상잔의 아픔,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시간들이 응축된 결과물이라는 해석이다. 마치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서 봄부터 울던 소쩍새의 울음과 먹구름 속 천둥이 결국 한 송이 국화를 피워내듯, 한국이 겪어온 모든 역사적 시련과 인고의 시간이 오늘날 한류라는 문화적 승화의 바탕이 되었다. 이는 한류가 단절된 흐름이 아닌, 한국 사회의 시간과 기억이 맺은 ‘기억의 꽃’이자, 그 모든 시련과 성공, 회복의 총체적인 문화적 결정체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류가 누구를 위해 피어난 것인지, 한국 사회 내부의 치유인지, 세계를 향한 몸짓인지, 혹은 둘 모두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한편, 한류의 진정한 힘은 언어를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김용락 시인의 ‘BTS에게’에서 언급되듯, K-콘텐츠, 특히 BTS와 같은 아티스트들은 단순한 문화 상품을 넘어 자신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들의 음악과 메시지는 ‘LOVE MYSELF, LOVE YOURSELF!’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담아내며,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가슴이 뛰고 인간이 된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이는 K-팝, K-드라마 등 K-콘텐츠가 단순히 완성도나 스타일만으로 세계인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언어로 진심을 고백하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세계의 감수성’과 접속하는 핵심 비결임을 증명한다. 팬덤은 이러한 진정성에 공감하는 ‘공감의 공동체’이자 ‘문화의 공동 창작자’로서 기능하며, K-콘텐츠의 울림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장해온 한류는 현재도 ‘진정한 여행’의 여정 중에 있다. 나짐 히크메트의 시에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고 말하듯, 한류 역시 절정에 이르지 않았으며 더 많은 서사, 깊은 공감, 다양한 목소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지금까지의 성과에 안주하는 것은 금물이다. 한류가 추구해야 할 미래상은 단순한 외연 확장을 넘어, 지속 가능한 가치, 다문화적 포용, 그리고 인간성 회복에 있다. K-콘텐츠가 세계를 향해 말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 안의 진실을 담아낼 때, ‘진정한 여행’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창·제작자에게는 영감과 상상을, 플랫폼과 유통 현장에는 전략과 방법론을, 연구자에게는 전망과 통찰을, 정책 담당자에게는 기획과 비전을, 그리고 수용자에게는 향수와 감동을 선사하는 한류의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달 착륙 청소부’ 일화가 던지는 메시지: 나의 ‘일’은 무엇인가

    최근 군 부대 강연 요청이 부쩍 늘고 있다는 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경험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일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치와 무관하게 나라를 지키는 자부심으로 헌신해 온 군인들이 때로는 여론이나 대중의 목소리에 상처 입고 좌절하는 현실은, 단순히 직업의 명칭을 넘어선 ‘일’에 대한 존중과 가치 인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보상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군인이나 소방관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직업적 의무를 넘어, 그들이 수행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신 위원장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직장인 강연의 시작 질문인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를 통해 ‘일’에 대한 개인의 마음가짐과 자부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프로젝트 성공 이면에 숨겨진 NASA 청소부의 일화를 소개한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 NASA를 방문하여 청소부에게 “당신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어떤 일을 담당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청소부는 “저는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청소부의 말에서 느껴지는 자부심은, 비록 누가 감동을 위해 꾸며낸 이야기일지라도,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일’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일이 단지 맡은 바 임무 수행을 넘어, 더 큰 목표 달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일’에 대한 인식은 군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신 위원장은 군인들이 “무엇을 먹고 사느냐”는 질문을 통해, 그들이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국가와 사회를 지키는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는 최고급 쇠고기가 누구에게나 맛있듯,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가치’를 가진 일이라면 그 일이 군인의 임무든, 소방관의 희생이든, 혹은 NASA 청소부의 역할이든 그 자체로 존경받을 수 있음을 역설한다. 미국에서 소방관이 가장 존경받는 직업 1위라는 사실은, 선한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함에 국민들이 존경을 표한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들이 군인들의 헌신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의 예를 표할 때, 비로소 그들의 ‘일’은 진정한 의미와 자부심을 얻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영철 위원장은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개개인이 자신의 ‘일’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그 안에서 자부심과 가치를 발견하길 촉구한다. 아폴로 11호 프로젝트의 청소부처럼, 자신의 역할이 전체 목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인식하고 자부심을 가질 때, 어떤 어려운 과제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직업적 만족감을 넘어, 개인의 정신적 건강과 사회 전체의 긍정적인 발전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 질문에 대해 자신만의 멋진 스토리를 만들고, 누구도 할 수 없는 자신만의 멋진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AI 시대, 출판의 본질적 가치를 재확인하다: ‘2025 출판산업포럼’에서 발견한 사람 중심의 미래

    9월 독서의 날을 맞아 개최된 ‘2025 출판산업포럼’은 기술 발전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책과 글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된 이번 포럼은 선착순 현장 참석 기회를 놓친 많은 이들에게도 시공간의 제약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출판 산업의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한 포럼 접근성은 참가자들에게 높은 몰입감을 선사했으며,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참가자들의 활발한 반응과 정보 공유가 이어져 단순한 시청을 넘어선 적극적인 참여 경험을 제공했다.

    이번 포럼의 핵심 주제는 ‘AI와 출판, 상상 그 이상의 미래’로, 오래된 산업인 출판과 최첨단 기술인 인공지능의 만남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전문가들은 AI가 텍스트 자동 생성 및 편집 효율화에 기여할 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데이터 기반의 독자 분석과 맞춤형 출판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논의는 AI를 단순한 대체 기술이 아닌, 출판 업계의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포럼 전반에 걸쳐 가장 강력하게 강조된 메시지는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는 글의 가치였다. AI가 초고 작성이나 자료 정리에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인간 고유의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창조하고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능력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이 여러 차례 강조되었다. 글에 담긴 온기와 맥락,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의 교감은 출판의 본질로서, AI 시대에도 변치 않을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온라인 참여는 콘텐츠를 다시 시청하고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강의 자료를 활용한 심층적인 학습까지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장점들은 현장의 열기를 직접 느끼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더 높은 집중력과 기록의 용이성을 제공하며 뜻밖의 만족감을 선사했다.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은 출판산업포럼의 의미를 더욱 폭넓게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포럼은 단순히 출판 시장의 현황을 진단하는 자리를 넘어, 독자, 창작자, 기술, 그리고 산업이 조화롭게 융합할 수 있는 미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장이었다. AI는 출판계에 위기 또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이날의 논의는 이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사람과 기술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더 큰 무게를 두었다. 글을 쓰는 사람의 감각과 기술의 효율성이 결합될 때, 우리는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더 많은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의 달에 개최된 이번 포럼은 책과 글의 가치가 도전받는 시대에도 출판이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임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AI 시대에 자칫 기계가 쓰는 글과 사람이 쓰는 글을 동일시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이번 포럼은 사람의 언어에 담긴 삶과 경험, 그리고 감정의 힘을 재조명했다. 특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글쓰기’의 영역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 출판 산업은 기술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겠지만, 글을 쓰고 읽는 사람들의 온기와 교감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이번 포럼에서 확인된 가능성과 다짐은 출판의 미래가 단순히 기술 혁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지켜내고 확장하는 과정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화면 너머에서 만난 이 시간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글쓰기의 힘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 강화, ‘소창’의 옛 영광을 딛고 문화와 맛의 새로운 중심으로 재탄생하다

    대한민국 네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는 역사와 호국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는 계절마다 다채로운 식도락의 향연과 함께 지역의 옛 산업 문화를 재조명하며 새로운 문화적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과거 섬의 경제를 이끌었던 직물 산업, 그중에서도 ‘소창’이라 불리는 독특한 직물의 역사와 문화는 오늘날 ‘강화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를 통해 그 명맥을 이어가며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과거 강화는 수원과 함께 전국 3대 직물 도시로 불릴 만큼 활발한 직물 산업의 중심지였다. 1933년 ‘조양방직’ 설립을 시작으로 1970년대까지 60개가 넘는 방직 공장이 성업했으며, 4000명에 달하는 직공들이 종사하며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1938년 건축된 한옥과 염색 공장이었던 ‘평화직물’ 터를 리모델링한 ‘강화소창체험관’과 폐 소창 공장 ‘동광직물’을 생활문화센터로 개관한 사업을 통해 역사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1933년 강화 최초의 인견 공장 ‘조양방직’의 흔적부터 현재까지 옛 방식 그대로 소창을 직조하는 6개의 소창 공장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소창은 목화솜에서 뽑아낸 실로 짠 천으로, 과거에는 주로 옷감, 행주, 그리고 기저귀감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면화를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지에서 수입하여 사용했으며, 하얀 왕골로 유명한 강화는 화문석(꽃무늬 자리)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최상급 화문석을 짜던 강화 사람들의 손길은 자연스럽게 직물 산업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소창의 제작 과정은 옥수수 전분으로 풀을 먹이고 표백하는 과정, 그리고 자연 건조하는 단계를 거친다. 이렇게 만들어진 뽀얗고 부드러운 실을 씨실과 날실로 교차시켜 베틀에서 평직물로 엮어내는 모든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에서는 강화 여성들의 억척스러운 삶의 애환이 담긴 ‘방판’ 문화도 엿볼 수 있다. 완성된 방직물을 직접 둘러메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중간상인 없이 직접 판매했던 ‘방판’은 강화 여성들의 강인함을 상징한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앞치마에 싸간 강화 새우젓을 찬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팍팍했던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강화 여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강화 새우젓은 서해안 전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젓새우 중에서도 강화의 드넓은 갯벌과 한강, 임진강이 만나는 독특한 지리적 조건 덕분에 월등한 맛을 자랑한다. 짠맛보다는 들큼하면서도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며, 특히 늦가을 김장철이면 강화 새우젓을 사기 위한 인파로 섬이 들썩일 정도다. 이러한 강화 새우젓은 강화의 소박한 향토 음식인 ‘젓국갈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젓국갈비는 갈비, 호박, 두부, 배추 등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지지만, 그 중심에는 새우젓의 감칠맛이 자리 잡고 있다. 새우젓이 주는 슴슴하면서도 짭짤한 감칠맛과 배추에서 우러난 단맛의 조화는 인공 조미료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맛을 선사한다. 이는 ‘대미필담(大味必淡)’, 즉 맛있는 음식은 담백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며, 젓국갈비가 단순한 음식을 넘어 강화 사람들의 지혜와 정성이 담긴 특별한 요리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강화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소창’이라는 직물 산업의 유산을 통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강화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는 과거의 찬란했던 직물 산업의 영광을 재현하고, 그 맥을 잇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더불어 강화 새우젓과 젓국갈비와 같은 지역의 독특한 음식 문화는 강화의 매력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문화,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강화도는 이제 ‘역사의 섬’을 넘어 ‘문화와 맛의 섬’으로 새롭게 주목받을 것이다.

  • 사라져가는 ‘우표 수집’의 매력,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5월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우리 사회의 풍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때 많은 이들의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던 ‘우표’가 그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아쉬운 지점이다. 어린 시절, 방학 숙제를 위해 우표로 책받침을 만들었던 기억, 혹은 1990년대 기념 우표 발행일에 새벽부터 우체국 앞에 줄을 섰던 풍경은 이제 낯설게만 느껴진다. 당시에는 ‘내 취미는 우표 수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아이들이 많을 정도로 우표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빵을 사면 캐릭터 스티커를 모으는 것과 비견될 정도의 위상이었던 우표의 인기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손편지가 귀해지고 디지털 소통이 보편화되면서 점차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우표 수집은 여전히 충분히 매력적인 취미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부피가 작아 보관이 용이하며,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또한 매년 다양한 디자인의 기념 우표가 발행되어 수집의 즐거움을 더하며, 국내 우표만으로 부족하다면 해외 우표까지 시야를 넓혀 무한한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다. 우표는 크게 우편 요금 납부를 주목적으로 발행 기간과 발행량이 정해지지 않은 ‘보통 우표’와,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 등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되며 발행 기간과 발행량이 제한적인 ‘기념 우표’로 구분된다. 특히 기념 우표는 보통 우표에 비해 희소성이 높아 수집가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대한민국의 기념 우표는 우정사업본부의 고시에 따라 매년 국내외 주요 행사, 인물, 자연, 과학 기술, 문화 등 다채로운 주제를 선정하여 1년에 약 10~20회 정도 발행되고 있다. 실제로 2025년에는 총 21종의 기념 우표 발행이 계획되어 있으며, 지난 5월 8일에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사랑스러운 아기’를 주제로 한 우표가 발행되었다. 또한, 이러한 중앙 기관의 발행 외에도 각 지방의 우정청이나 우체국, 지방 자치 단체 등에서도 자체적으로 기념 우표를 기획하고 제작하며 지역의 특색을 담아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1주년을 기념하여 강원지방우정청과 강원일보사가 협업하여 발행한 우표첩 ‘찬란한 강원의 어제와 오늘’은 강원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소중한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호평을 이끌어냈다. 더불어 지난해 태백우체국이 발행한 ‘별빛 가득한 태백 은하수 기념우표’와 올해 4월 양구군이 발행한 ‘양구 9경 선정 기념우표’는 강원의 아름다움을 담아내어 단순한 수집품을 넘어 지역 홍보의 수단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매력을 지닌 우표가 본연의 위상을 잃어버린 현실은 분명 아쉬움을 남긴다. 한때 모두의 즐거움이었던 우표가 다시금 이 시대에 누군가의 흥미로운 취미이자 즐거움이 되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왕릉팔경’ 프로그램으로 엿보는 역사와 대한제국 황실의 숨겨진 이야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은 단순한 무덤을 넘어 찬란했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귀중한 유적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에서 2025년 하반기에 ‘왕릉팔(八)경’이라는 특별한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과 궁궐을 연계하여 참가자들이 역사 속 깊은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도록 기획되었다.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2025년 11월 10일까지 총 22회에 걸쳐 운영된다. 예약은 8월 21일(9월 예약), 9월 25일(10월 예약), 10월 16일(11월 예약)에 각각 오전 11시부터 네이버 예약을 통해 선착순으로 진행된다. 회당 참가 인원은 25명으로 제한되며, 한 사람당 최대 4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어르신,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전화 예약(02-738-4001)도 가능하다.

    최근 이 프로그램 중 하나인 ‘순종황제 능행길’에 참여한 기자 경험에 따르면, 늦여름의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조선왕릉이 지닌 매력은 여전히 빛났다. 이번 여정은 구리 동구릉에서 시작하여 남양주 홍릉과 유릉까지 이어지며, 왕릉과 왕릉 사이를 걸으며 역사의 숨결을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했다. 특히 이번 프로그램은 기존의 조선 왕실 중심 탐방에서 벗어나 대한제국 황실 관련 유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왕릉 문화를 비교하며 역사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근대 전환기의 역사와 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된다.

    동구릉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하여 선조의 목릉,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 씨의 휘릉 등 총 9기의 능침이 모여 있는 조선 최대 규모의 능역이다. 1408년 건원릉 조성 이후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능역의 구조, 제향의 의미, 그리고 능묘에 담긴 정치적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이 제공된다. 특히 표석(表石)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인상 깊었는데, 송시열의 상소를 통해 왕릉마다 해당 임금을 알 수 있는 표석이 세워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예의 엄격함과 기억 보존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전서체로 쓰인 표석의 글씨체 또한 송시열의 주장으로, 제왕의 특별함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번 탐방의 핵심이었던 순종 황제의 능행길은 대한제국 황실의 비극적인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순종은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제였다. 1908년 순종이 반포한 ‘향사리정에 관한 건’ 칙령은 기존의 여러 차례 제사를 1년에 두 번으로 축소하는 을 담고 있다. 이는 종묘 정전에 모셔진 왕과 왕비의 능에는 명절제와 기신제를 모두 지냈지만, 정전에 모셔지지 않은 임금과 왕비의 능에서는 명절제만 지내도록 하는 등 제사 제도의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오늘날에는 명절제 대신 기신제가 중심으로 남아 제사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왔으며,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은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동구릉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은 봉분을 뒤덮은 억새로 유명하다. 이는 태조가 생전에 남긴 “사후에는 고향의 억새를 가져와 무덤에 심어 달라”는 유훈에 따라 조성된 것으로, 6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독특한 전통이다. 건원릉의 표석에는 ‘대한 태조 고황제 건원릉’이라 적혀 있어 태조의 위상이 황제로 격상되었음을 보여주며, 이는 왕릉 제도와 예제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봉분 주변의 병풍석, 난간석, 호랑이와 양 석상, 망주석, 곡장 등은 왕의 위엄과 수호를 상징하며, 정자각에서 올리는 제향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공간으로서 왕릉의 핵심 의례 공간으로 기능한다.

    추존왕의 능 역시 흥미로운 역사를 담고 있다. 생전에 왕이 아니었으나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추존된 왕들의 무덤은 정통 왕릉과 차이가 있으며, 석물의 배치 등에서 구분된다. 건원릉의 신도비에는 ‘역신 정도전’과 ‘공신 봉화백 정도전’이라는 상반된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정치적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수릉에 합장된 익종(효명세자)과 신정왕후의 무덤은 세자 신분으로 서거한 익종보다 왕대비로 별세한 신정왕후의 지위가 높아 배치가 달라진 예외적인 사례로, 당시의 서열 의식이 왕릉 공간에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동구릉 내 유일하게 세 기의 봉분이 나란히 배치된 삼연릉은 헌종과 두 왕비(효현왕후·효정왕후)가 합장된 능이다. 이곳의 비석은 여러 차례 다시 새겨진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는 석비 제작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려 했던 당시의 사정을 보여준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은 기존 조선 왕릉의 형식을 벗어나 대한제국 황릉의 양식을 따르며, 석물의 배치, 봉분의 규모, 향어로 장식 등에서 황제의 권위를 강조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아픔이 깃들어 있다. 홍릉 비각 표석에 얽힌 일본과의 갈등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시간을 넘어, 미래 세대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갈 것인가를 묻는 자리임을 상기시킨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왕릉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그 뒤에 담긴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오늘의 의미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역사의 숨결과 함께 호흡하며 미래를 위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400만 관객 돌파 ‘귀멸의 칼날’, 6천 원 할인권 재배포로 영화산업 활기 되찾나

    가계 경제의 부담을 덜고 침체된 영화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 관람료 할인권 추가 배포가 시작됐다. 지난 7월 25일부터 450만 장이 배포된 데 이어, 8일부터는 미사용된 잔여분 188만 장이 추가로 풀리면서 시민들의 영화관 나들이를 독려하고 나선 것이다. 이번 할인권은 ‘귀멸의 칼날’과 같이 누적 관객 400만 명을 돌파한 인기작부터 독립·예술영화까지, 장르와 규모를 가리지 않고 모든 영화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기존 1차 배포 당시 할인권을 사용했던 관객들도 이번 2차 배포되는 할인권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별도의 다운로드 절차 없이 극장 애플리케이션 내 쿠폰함에 1인당 2매가 자동 지급되기 때문이다. 다만, 신규 회원으로 가입하는 경우 회원 가입 후 다음 날 쿠폰이 지급되므로 서둘러 신청해야 한다. 이러한 할인 혜택은 대형 멀티플렉스뿐만 아니라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작은영화관, 실버영화관 등 다양한 형태의 영화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번 할인권 배포는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위축된 영화산업을 회복시키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 발표에 따르면, 1차 할인권 배포 기간 동안 영화관을 찾은 관객 수는 올해 7월 24일까지의 일평균 관객 수 대비 1.8배 증가하는 효과를 보였다. 또한, 할인권 배포 후 3주간의 분석 결과, 최근 1년간 영화관을 찾지 않았던 신규 또는 기존 고객의 10명 중 3명이 다시 극장을 찾은 것으로 나타나, 할인권이 신규 관객 유입 및 잠재 관객의 영화관 방문을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은 영화 관람을 망설였던 많은 시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OTT 서비스의 보편화로 안방극장에서 영화를 즐기는 것이 익숙해진 시대에,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대형 화면과 몰입감 넘치는 사운드는 여전히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할인권 덕분에 극장을 다시 찾은 시민들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만끽하는 여유와 즐거움이 가득하다. 이번 6천 원 할인권 추가 배포가 침체된 영화 산업에 훈풍을 불어넣고, 시민들에게는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누릴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 폐기물 소각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부천아트벙커B39의 놀라운 변신

    도시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쓰레기와 그로 인한 환경 문제, 그리고 과거 산업화 시대의 애환은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풍요로운 삶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그림자다. 한때는 도시의 골칫거리였던 폐기물 처리장이 이제는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사실은, 그 이면에 담긴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곱씹게 한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를 넘어,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재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부천아트벙커B39는 이러한 도시의 변화와 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약 33년 전인 1992년, 부천 중동 신도시 건설과 함께 환경부 지침에 따라 부천 삼정동에 쓰레기 소각장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1995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된 이 소각장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하루 200톤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쓰레기를 처리했다. 하지만 1997년, 환경부의 조사 결과 해당 소각장에서 허가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고농도 다이옥신이 검출되면서 심각한 환경 문제와 주민 건강에 대한 우려가 불거졌다. 마을 주민들과 환경 운동가들은 소각장 폐쇄 운동을 벌였고, 한 번 잃어버린 신뢰는 끝내 회복되기 어려웠다. 결국 2010년, 폐기물 소각 기능이 대장동 소각장으로 이전 및 통합되면서 삼정동 소각장은 가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쓸쓸한 폐건물로 남을 뻔했던 이 공간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2018년, 이곳은 복합문화예술공간 ‘부천아트벙커B39’로 새롭게 문을 열며 과거의 오명을 씻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과거 쓰레기를 태우던 거대한 굴뚝과 소각로는 이제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건축 요소로 변모했다. 소각로는 하늘과 채광을 가득 끌어들여 다양한 각도와 높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에어갤러리(AIR GALLERY)’로 재탄생했다. 햇살이 쏟아지는 이곳은 과거 뜨거운 열기로 쓰레기를 태우던 공간이었음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폐기물 저장조였던 거대한 콘크리트 공간, 벙커(BANKER)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곳은 ‘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된 핵심 공간으로, 쓰레기들이 마지막으로 향했던 ‘관’이자 ‘마지막 관문’이었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벙커와 연결된 쓰레기 반입실은 현재 멀티미디어홀(MMH)로 활용되며 관람객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소각동의 2층과 3층 역시 펌프실, 배기가스처리장 등 과거의 거대한 설비 기반을 그대로 유지하며 전시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중앙청소실을 리모델링한 아카이빙실에서는 ‘RE:boot 아트벙커B39 아카이브展’을 통해 다이옥신 파동과 시민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이 소각장이 어떻게 주민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하게 되었는지 생생한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숲이 그린 이야기’에서는 동네 어린이집 아이들의 그림으로 소각장 상징인 굴뚝 모양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소리와 색으로 가득한 숲을 이루는 모습을 담아내며,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희망찬 미래의 메시지로 치환시켰다.

    쓰레기 처리장이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과거의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 성공적인 도시재생의 사례다. 폐기물로 인해 발생했던 환경 문제와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딛고, 예술과 문화를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민들에게는 새로운 휴식과 영감의 공간을 제공한다. 이처럼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노력이 결합되어 탄생한 부천아트벙커B39는 도시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끊임없는 변화의 힘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간의 재탄생은 모든 것이 쇠락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지혜와 노력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