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문화/생활

  • 쓰레기 소각장, 뼈다귀 해장국: 과거의 애환에서 현재의 문화와 미식으로

    한때 가난과 허기를 이겨내기 위한 지혜의 음식이었던 뼈다귀 해장국이 이제는 일상이자 가벼운 별식이 되었다. 이는 마치 도시의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처리장이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과거의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변모를 상징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넘어, 과거의 애환을 극복하고 현재의 풍요를 누리는 지혜를 보여준다. 결국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견디고 보아야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과거 한국의 도시들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사업 실패 후 누이가 있는 마산으로 이사해야 했던 필자의 아버지 이야기는 당시 많은 이들의 삶을 대변한다. 40년 전 제법 잘 나가던 도시였던 마산은 사계절 활기찬 마산어시장과 한일합섬이라는 섬유 제국, 수출자유지역을 바탕으로 도시를 떠받쳤다. 또한, 고향 함안을 떠나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에 입학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던 사촌 언니의 모습은 ‘산업체’ 역군으로 불리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과 노력을 보여준다. 이들은 기름때와 먼지 속에서도 잘 살아보겠다는 꿈 하나로 전국 각지에서 상경하여 땀 흘렸던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수도 서울의 강력한 배후 도시였던 부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아남산업, 삼성전자 반도체, 로켓트보일러 공장 등 2,000여 개의 공장이 들어섰고, 사람들은 공장을 따라 줄을 이었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전국 평균 인구 증가율이 27.7%일 때 부천은 102.9%를 기록했으며, 1980년대 초 수도권 인근 도시들이 40~50%대의 인구 증가율을 보일 때 부천은 무려 126%로 수직 상승했다. 서울 개발에서 밀려왔든, 시골에서 상경했든, 부천은 내 집 한 칸 마련하겠다는 서민들의 땅이었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이러한 부천 원미동의 모습을 전국적으로 알리며, 가난 속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과 슬픔 속에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 소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다는 것은, 당시의 애환과 서민들의 삶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애환을 딛고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부천아트벙커B39는 과거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공간이다. 1992년 부천 중동 신도시 건설과 환경부 지침에 따라 삼정동에 쓰레기 소각장이 설치되었고, 1995년부터 하루 200톤의 쓰레기를 처리했다. 그러나 1997년, 허가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고농도 다이옥신이 검출되면서 주민들과 환경 운동가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2010년 대장동 소각장으로 기능이 이전되면서 삼정동 소각장은 문을 닫았다. 쓸쓸한 폐건물로 남을 뻔했던 이곳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2018년 복합문화예술공간 ‘부천아트벙커B39’로 새롭게 개관했다. 거대한 굴뚝과 쓰레기 소각로는 이제 하늘과 채광을 가득 끌어들이는 ‘에어갤러리(AIR GALLERY)’로 변모했으며, 쓰레기 저장조였던 벙커(BANKER)는 ‘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된 핵심 공간으로, 쓰레기 반입실은 멀티미디어홀(MMH)로 활용되는 등 놀라운 환골탈태를 이루었다. 소각동의 거대한 설비 기반 전시물들은 과거를 증명하며, ‘RE:boot 아트벙커B39 아카이브展’은 다이옥신 파동과 시민운동, 그리고 이곳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하기까지의 눈물겹도록 생생한 역사를 보여준다.

    한편, 부천 원미동 ‘조마루사거리’에 위치한 뼈다귀 해장국 가게들은 과거 개발도상국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 현재 우리의 일상이자 별식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감자탕은 인천 미군 부대에서 나온 돼지 뼈다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정확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감자가 들어 있으면 감자탕, 없으면 뼈다귀 해장국으로 불리며 길거리 어디에서나 만 원 한 장으로 즐길 수 있는 서민들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수입 돼지고기의 발달로 뼈다귀에 붙은 살이 더욱 풍성해지면서 뼈다귀 해장국은 시대에 역행하는 가격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특히 1988년 부천 원미동에서 창업한 한 가게의 뼈다귀 해장국은 깍두기, 양파, 청양고추 등 기본에 충실한 반찬과 함께, 맑고 깨끗하면서도 산뜻한 국물이 특징이다. 두툼한 뼈다귀 세 점과 푹 익힌 우거지, 그리고 팔팔 끓는 뚝배기 해장국의 깊고 자극적인 맛은 어떤 산해진미와도 비교할 수 없다. 이제는 외국인들도 깻잎과 들깨 향의 매력에 빠져 K-푸드의 일원으로 즐기고 있으며, 이는 가난과 허기를 이겨낸 지혜의 음식이 보편적인 미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어려움과 애환을 딛고 현재의 문화와 미식으로 승화된 이 두 가지 사례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끈질기게 견디고 노력하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쓰레기 소각장이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 세계적인 K-푸드로 발전한 것처럼, 우리의 도시와 삶 또한 과거의 아픔을 발판 삼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토니상 6관왕, 28년 전 ‘사랑이 뭐길래’의 맹아(萌芽)를 돌아보다

    최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토니상 6관왕이라는 쾌거를 달성하며 한류의 글로벌 성공 서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을 모두 수상하는 EGOT라는 전설적인 경지에 한국 작품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선다. 이러한 시점에서, 28년 전 한국 대중문화가 중국 땅에서 처음으로 거대한 반향을 일으키며 한류의 씨앗을 뿌렸던 그 순간을 되짚어보는 것은 우리 문화의 깊이와 넓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류의 기원을 논할 때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시점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1997년 6월 15일 일요일 오전 9시 10분, 중국 CCTV를 통해 방영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다. 이 55부작 주말 드라마는 당시 한국에서 최고 시청률 64.9%를 기록하며 역대 2위에 오른 작품이었으나, 중국에서의 파급력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 광범위했다. ‘<사랑이 뭐길래>‘라는 으로 중국 전역에 방송된 이 드라마는 매주 일요일 아침, 중국 가정에 한국의 대가족 풍경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총 시청률 4.2%, 평균 시청자 수 1억 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는 중국에서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종영 후에도 재방송 요청이 쇄도하여 CCTV가 2차 방영권을 구매해 1998년 저녁 시간대에 다시 편성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 드라마를 통해 한류라는 거대한 문화적 흐름이 점화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가장 지배적이다.

    물론 한류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1993년 드라마 <질투>(중국명 ‘녹색연정’)의 방영설, 1994년 영화 <쥬라기 공원>의 아젠다가 국내에 소개되며 대중문화 콘텐츠 산업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다는 주장, 1995년 SM의 출범, CJENM의 영상 산업 진출, 뮤지컬 <명성황후> 초연, SBS 드라마 <모래시계> 방영 등을 근거로 드는 1995년설 등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또한 중국 언론이 ‘한류(韓流)’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1999년 11월 19일을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설 중에서 <사랑이 뭐길래>의 방영 시점을 한류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은 화제성, 상징성, 그리고 실제적인 영향력 면에서 압도적인 설득력을 지닌다. ‘용어가 나오기 이전부터 이미 실행으로서, 그리고 현상으로서 한류가 시작되었다’는 평가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랑이 뭐길래>가 한류의 시작점이라면, 이는 한류의 역사가 아직 30년이 채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30년은 한 세대를 구분하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지난 2023년부터 ‘한류 30년’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논의 속에는 한국인들이 한류를 통해 ‘0.7퍼센트의 반란’, ‘단군 이래 최대 이벤트’를 이루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과거의 가난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당시 중국이 한국 드라마와 K팝 등 한국 문화를 받아들인 배경에는 서구 문화에 대한 경계심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한국 문화가 대체재로 소비된 측면이 있다. 필자 역시 2004년 저서 <3인3색 중국기>를 통해 ‘중국은 문화할인율이 낮은 한국 대중문화를 일종의 대체재로 소비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비록 중국 당국이 일정 수준 이상의 한류 확산에 제동을 걸고, 이후 사드(THAAD) 사태를 빌미로 ‘한한령’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한류와 K-콘텐츠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BTS, 블랙핑크,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은 중국 시장과는 무관하게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는 창작자들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였다.

    이처럼 중국에서 점화된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일부에서는 한국 드라마나 가요를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중국에서의 성공을 통해 K-콘텐츠의 높은 완성도, 보편적인 소구력, 그리고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해 형성된 뛰어난 제작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한국 영상 콘텐츠는 <겨울연가>,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를 거쳐 <기생충>, <오징어 게임>으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K팝은 2011년 SM의 파리 공연을 시작으로 BTS, 블랙핑크, 스트레이키즈, 세븐틴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배출하며 불멸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결론적으로, 최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6관왕이라는 성과는 단순한 성공을 넘어, 28년 전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시작된 한류의 여정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서울 대학로에서 출발한 작은 뮤지컬이 세계 무대를 석권하고, EGOT라는 전설적인 경지에 도전하는 현재를 볼 때, 28년 전 중국에서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점화된 한류의 맹아(萌芽)가 얼마나 위대한 문화적 성취로 이어졌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 아티스트 태연, 10년의 음악 여정을 담은 특별한 협업으로 소비자를 사로잡다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테크 액세서리 브랜드 케이스티파이(CASETiFY)가 아티스트 태연과 손잡고 특별한 컬렉션을 선보인다. 이는 태연과 케이스티파이의 첫 번째 협업으로, 아티스트 태연이 데뷔 10주년을 맞이하는 의미 있는 시점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번 컬렉션은 지난 10년간 태연이 음악을 통해 팬들에게 선사해 온 다채로운 이야기와 그 음악적 여정을 담아내고자 했다.

    아티스트 태연은 지난 10년간 솔로 아티스트로서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해 왔다. 그녀의 음악은 발표될 때마다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며, 음악적 깊이와 폭넓은 스펙트럼을 인정받아 왔다. 이러한 태연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아온 음악적 유산과 팬들과의 소통은 이번 컬렉션의 주요 영감으로 작용했다. 케이스티파이는 이러한 태연의 아티스트로서의 서사를 테크 액세서리에 접목하여, 팬들에게는 특별한 소장 가치를,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스타일리시한 아이템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컬렉션은 단순히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을 넘어, 태연의 음악적 색깔과 감성을 디자인에 녹여내는 데 집중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케이스티파이의 혁신적인 테크 액세서리를 통해 태연의 10년간의 음악적 발자취를 소장하고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라이프스타일 테크 액세서리 브랜드로서 케이스티파이가 추구하는 가치와 아티스트의 예술적 협업이 만나 시너지를 창출하는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이번 컬렉션 출시를 통해 케이스티파이는 젊고 트렌디한 소비자층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 라인업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티스트 태연 역시 1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에 팬들과 더욱 깊이 소통하고 새로운 형태의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그의 영향력을 더욱 확장할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 깊어가는 가을, ‘실버마이크’가 시민들의 일상 속 문화 공백을 채운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 포함된 주간에 열리는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2025 문화가 있는 날 실버마이크 수도·강원권’ 행사가 10월에도 시민들을 찾아간다. 이 행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도시 생활 속에서 문화 향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중들에게, 특히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감성과 깊이를 담아낼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실버마이크’는 바로 이러한 문화 공백을 메우고 시민들의 일상에 음악적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번 10월 ‘실버마이크’는 ‘가을의 향기’를 주제로 삼아, 시민들이 계절의 정취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도심 곳곳에서 열리는 무대를 통해, 시민들은 익숙한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문화적 감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실버마이크’는 단순히 공연을 선보이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취향이나 접근성의 제약 없이 누구나 쉽게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실버마이크’ 행사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시민들은 팍팍한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예술이 주는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가을의 향기’라는 주제는 깊어가는 계절과 맞물려, 시민들에게 정서적 안정과 문화적 만족감을 동시에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버마이크’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며, 일상 속 문화의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 사라진 산업의 향수를 담다, 장생포 고래 문화의 현대적 재해석

    과거 울산 장생포는 수심 깊은 바다와 풍부한 먹거리를 바탕으로 고래잡이 산업의 중심지였으나, 국제포경위원회의 결정으로 1986년 상업 포경이 전면 금지되면서 그 영광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장생포는 과거의 산업적 번영을 넘어, 사라진 산업과 생업, 그리고 포경선에 대한 애도와 향수의 정서를 담아내는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단순히 고래고기를 먹는 장소를 넘어, 한때 도시의 경제를 지탱했던 고래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장생포는 예로부터 고래의 풍요로운 서식지였다. 신라시대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잡이 그림과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래 뼈, 유물들은 이곳이 선사시대부터 고래가 모여들던 깊은 바다였음을 증명한다.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태화강, 삼호강, 회야강 등에서 유입되는 풍부한 부유물과 플랑크톤은 새우를 비롯한 작은 물고기들을 불러 모았고, 이는 곧 새끼를 낳기 위해 장생포를 찾는 고래들에게 최적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장생포 앞바다는 대형 선박이 접안하기에도 용이했으며, 한때는 개가 만 원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수출입품을 실어 나르는 대형 선박이 빼곡했고, 6~7층 규모의 냉동 창고들도 즐비했던 장생포의 모습은 그 시절의 번영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번영 뒤에는 개발과 산업화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었다. 1980년대 조성된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제련소, 석유화학공장, 중화학 기업들이 집중되면서 구리·아연 제련소에서 배출된 중금속으로 인해 주민들이 ‘온산병’이라 불리는 중금속 중독 질환을 겪기도 했다. 쉼 없이 굴뚝이 매캐한 연기를 내뿜던 과거의 풍경은 이제 잊히고, 십여 년 전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던 냉동창고가 2016년 울산 남구청에 의해 매입되어 2021년 ‘장생포문화창고’로 새롭게 개관했다. 이곳은 폐허가 된 공간을 시민들을 위한 복합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대표적인 업사이클링의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장생포문화창고는 총 6층 규모에 다양한 체험장과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은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거점이 되고 있으며, 특별전시관, 갤러리, 상설 미디어아트 전시관은 방문객들에게 다채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2층 체험관의 ‘에어장생’ 프로그램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거대한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는 한국 전통 회화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수십 년 된 냉동 창고의 문을 그대로 살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장생포문화창고의 의미를 더하는 것은 2층에 상설 전시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이다. 이곳은 울산 석유화학단지가 한국의 산업 심장부로서 ‘한강의 기적’을 선도했던 역사와 과정을 보여준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과 그 시대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부모 세대들에게는 더욱 애잔한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과거에는 옳았지만 지금에는 틀린 일들을 배우며, 우리는 늘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

    이제 장생포의 고래고기는 단순히 식탁 위에만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1986년 상업 포경이 금지된 이후, 장생포의 고래고기는 주로 혼획된 밍크고래를 합법적으로 유통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은 고래고기를 더욱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일두백미’라 불리는 소처럼, 고래 한 마리에서도 최소 12가지, 더 세분화하면 스무 가지 이상의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삶은 수육과 생회가 어우러진 모둠수육은 육고기와 닮은 듯하면서도 고유의 붉은 빛깔과 풍미를 자랑한다. 특히, 턱 아래 쭈글쭈글한 부채꼴 모양의 ‘우네’나 다섯 겹으로 이루어진 ‘오배기’는 고래고기 특유의 맛과 식감을 극대화하는 고급 부위로 꼽힌다. 부위마다, 조리법마다 소금, 초고추장, 고추냉이 간장 등 다양한 소스와 어우러져 다채로운 맛을 선사하며, 때로는 보쌈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생 조갯살처럼 꼬들꼬들한 식감을 자랑한다.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과거의 영광을 단순히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사라진 산업, 사라진 생업, 사라진 포경선에 대한 ‘애도와 향수의 정서’를 담아내는 의례와도 같다. 고래로 꿈을 꾸었던 어부들, 고래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던 이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이 이곳에 녹아있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그 기억과 정신은 고래고기라는 형태로, 그리고 장생포문화창고라는 공간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고래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더 나은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한다.

  • 반구천 암각화, 6000년 역사의 벽화 수몰 위협에서 벗어나 인류 유산으로 거듭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몰 위협과 싸워왔던 울산 반구천 암각화가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그 역사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영광스러운 마무리가 아닌, 더욱 정교하고 지속적인 보존 및 관리 체계 구축이라는 새로운 과제의 시작을 알린다. 반구천 암각화는 60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성, 그리고 자연과의 깊은 교감이 바위에 새겨진 ‘역사의 벽화’로, 이제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반구천 암각화의 발견은 1970년 12월 24일,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의 회고에 따르면 한국 선사 역사 연구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전환점이었다. 울산 언양을 찾았던 그는 절벽에 새겨진 ‘이상한 그림’을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암각화인 천전리 암각화를 발견했다. 이듬해인 1971년 12월 25일에는 인근 대곡리에서 고래, 사슴, 호랑이 등 다양한 동물과 사냥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 또 다른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초기에는 천전리 암각화와 대곡리 암각화를 묶어 ‘반구대 암각화’로 불리었으나, 현재는 두 유적을 통칭하여 ‘반구천 암각화’로 불리며, 이번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공식 명칭 또한 ‘반구천 암각화’다.

    흥미롭게도 두 암각화는 발견 순서와 시대가 다르다. 청동기 시대 유적인 천전리 암각화가 신석기 시대 유적인 대곡리 암각화보다 먼저 발견되었지만, 나란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천전리 유적에는 높이 약 2.7m, 너비 10m 바위 면에 마름모, 원형 등 620여 점의 추상적 문양이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시대의 명문도 발견된다. 반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새끼 고래를 이끄는 무리, 작살에 맞아 배로 끌려가는 고래의 모습, 호랑이와 사슴 같은 육지동물, 그리고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러한 발견들은 ‘크리스마스의 기적’ 혹은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라 불릴 만큼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반구천 암각화를 “선사 시대부터 6000여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라고 평가하며,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특히 사실성, 예술성, 창의성은 이 암각화의 핵심 키워드로, 2010년 잠정목록에 오른 지 15년 만에 세계유산으로서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구천 암각화는 그동안 수몰이라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왔다. 댐 건설로 인해 바위가 물에 잠겨 박락이 떨어져 나가고, 어설픈 탁본으로 인해 원본이 훼손되는 일도 발생했다. 최근 잦은 가뭄으로 암각화가 비교적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기후 변화와 댐 운영의 변수는 여전히 ‘반구천’을 ‘반수천(半水川)’으로 되돌릴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 물속에 잠긴 유산은 세계유산의 지위를 잃을 수도 있으며, 부실한 보호·관리 계획은 유네스코의 등재 철회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적의 현장’이 ‘수몰의 현장’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한 과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울산시는 ‘고래의 도시’를 표방하며 꾸준히 고래 축제를 개최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왔다. 암각화 보존을 넘어 체험형 테마공원, 탐방로, 교육 프로그램, 워케이션 공간을 아우르는 생동하는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더불어 AI 기반의 스마트 유산관리 시스템, 암각화 세계센터 건립 등 미래형 전략도 병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관광 인프라라는 명분 아래 생태 환경이 훼손되거나 과잉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유산의 본질을 배반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보존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뛰어난 예술성으로 ‘선사 시대의 시스티나 성당’이라 불리는 라스코 동굴은 관광객 증가로 인한 환경 변화를 막기 위해 1963년 진본 동굴을 폐쇄하고 재현 동굴을 설치했다. ‘인류 선사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알타미라 동굴 역시 2002년 이후 일반 공개를 중단하고 정밀한 복제 동굴을 통해 교육과 관광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두 유적 모두 원본의 ‘아우라’를 지키기 위해 복제품을 통한 ‘간접 관람’ 방식으로 전환해야만 했다.

    오늘날 우리는 현대 기술, 즉 3D 스캔, 디지털 프린트, AI 제어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반구천 암각화 역시 후대에 온전히 물려주어야 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원본의 보존과 대중의 접근성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조화롭게 달성해야 한다. 반구천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의 꿈이 유네스코의 이름으로 되살아난 지금, 이 거대한 바위의 장엄한 서사는 인류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 과학과 예술의 융합, 장용선 개인전 통해 ‘생명의 본질’ 탐구

    생명 현상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술적 언어로 풀어내려는 장용선 작가의 개인전이 현재 매스갤러리 청담과 한남점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The Great Cosmic Shower : 물 먹은 별’과 ‘Mystic Eclipse : 기울어진 달,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부제로 2025년 10월 28일까지 관람객을 맞이한다. 22점의 조각 작품을 통해 작가는 우주와 생명의 근원을 탐색하며, 과학적 통찰과 예술적 감성을 결합한 독창적인 조형 세계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배경에는 ‘생명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작가의 깊은 성찰이 자리하고 있다. 천체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행성,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에서 생명의 기원을 찾으려는 연구는 우리의 몸을 이루는 분자들이 우주에서 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는 인류의 직계 조상이 우주에 존재하는 별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은 작가에게 생명의 본질이 우리 몸과 주변 생명체뿐만 아니라 광대한 우주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영역에 존재함을 인지하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거대한 행성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존재하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작가의 핵심 화두가 되었다.

    작가는 이 근원적인 질문을 ‘세포’라는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군집으로 형상화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절단된 파이프의 투과된 구조를 활용하여 세포의 형상을 구현하는데, 파이프 단면의 집적된 구조에서 세포 구성 배열의 시각적 특성을 포착했다. 이를 통해 파이프 단면은 세포를, 파이프의 배열은 생명체의 구조와 의미론적 맥락을 일치시키고자 했다. 이는 최소 단위의 모듈을 집적하여 미시적으로는 발아하고 분열하는 생명체 세포를 나타내는 동시에, 거시적으로는 우주에 존재하는 암흑 물질이나 행성 등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청담점에서 열리는 전시는 ‘물 먹은 별’이라는 주제 아래 연속성과 흐름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마치 물결처럼 이어지는 형태들은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과정을 담아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존재의 기원이 미세한 단위에서 출발하여 완성되며,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연대하는 부분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반면, 한남점에서 선보이는 ‘기울어진 달, 떠오르는 태양’ 전시는 작가 자신의 내밀한 감각에 더욱 집중한다. 일상적인 감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생기를 찾아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영원성에 가까운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물질을 사용하여 작가는 물성의 탐구를 심화시킨다. 철을 갈아내어 광택을 얻는 혹독한 시간을 거치고, 용접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인 다양한 색을 작품에 배치한다. 극지방의 오로라 같기도 하고, 그을린 자국 같기도 한 이러한 색상들은 특정 물성과 기법이 빚어내는 상호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

    조윤 큐레이터는 전시 서문을 통해 작가가 포착한 세포와 행성, 빛과 어둠의 알레고리, 즉 겉으로 드러난 통상적인 이야기와 깊숙이 숨겨진 상징적 의미가 장용선 작가의 미적 탐험과 심미적 바람에서 시작되는 조형 예술의 감각이자 근원이라고 평했다. 장용선 작가는 작업 노트를 통해 “나의 작업은 ‘생명의 본질’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밝히며, 과학적 발견과 예술적 사유를 결합한 독보적인 탐구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 불법·유해업소 밀집 지역, 문화와 창업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려는 노력

    과거 불법·유해업소가 밀집했던 지역이 주민과 청년창업가, 문화예술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거리 축제를 통해 문화와 창업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이 공동으로 개최한 ‘2025 두근두근 별길마켓’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였다. 과거 37개에 달했던 불법·유해업소는 현재 10여 개로 줄어들었으며, 삼양로 길음청년창업거리(길음역~미아초등학교 구간)는 이제 활기찬 문화와 창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이번 축제는 이러한 지역적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2025 두근두근 별길마켓’은 △청년창업마켓 △주민플리마켓 △문화예술체험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방문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했다. 청년가게와 청년창업가들은 자신들의 창업 제품과 콘텐츠를 선보이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고, 지역 예술인과 주민들이 함께하는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은 거리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날 행사에는 6,000여 명의 주민이 방문하며 성황을 이루었고, 성북문화재단은 이를 통해 주민들이 길음청년창업거리의 긍정적인 변화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문화를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성북구는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가칭)성북청년스마트창업센터 개관(2026년 2월 예정)과 올해 안에 청년창업점포 9호점을 개점하는 등 청년창업거리를 더욱 활성화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속적인 투자는 과거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100만 년 세월의 숨결, 용머리해안과 제주 소울푸드 고사리해장국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인기가 봄날의 유채꽃처럼 만개한 가운데, 제주를 향하는 발걸음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제주를 찾는 관광객 감소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제주 관광의 명성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과거와 달리 해외여행 수요 증가로 인해 국내 관광지로서 제주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높은 물가와 더불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제주가 겪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그 본질적인 매력을 재조명하고 가치를 재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주의 태곳적 비밀을 간직한 용머리해안은 십 년 만에 다시 그 위용을 드러내며 로컬100에 이름을 올리는 귀한 유산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용머리해안은 단 한 번의 화산 폭발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약 100만 년 전 얕은 바다에서 간헐적으로 반복된 수성화산 분출을 통해 만들어진 화산체다. 이 과정에서 화산재가 분화구를 막고 이동하면서 세 방향으로 쌓여 독특한 지층을 형성했으며, 이후 오랜 시간 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다시 화산재가 쌓이는 과정을 거치며 제주 최초의 땅이자 태곳적 땅으로서 그 모습을 완성했다.

    신화 속 설문대 할망의 돌 던지기로 생성되었다는 산방산과의 연관성보다는, 실제 용머리해안은 한라산과 산방산, 심지어 제주 본토가 생기기 훨씬 이전에 형성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라는 점이 지질학적으로 더욱 흥미롭다. 화산암과 옥색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100만 년 세월의 장엄한 무게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용머리해안은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작은 굴방과 넓은 암벽의 침식 지대, 사암층과 해안 절벽 등은 제주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며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과거 진시황이 이곳의 영기를 끊으려 했다는 전설이 깃든 용머리라는 이름처럼, 바위들이 용의 머리처럼 솟아오른 모습은 제주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처럼 장엄한 자연의 섭리와 역사를 품은 용머리해안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따른다. 바로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와 날씨 조건이다. 매일 오전 9시에 문을 여는 관광안내소에 입장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미끄럽지 않은 편안한 신발을 착용하고 방문해야 한다. 또한, 거북손과 어패류들이 단단히 발을 붙이고 있는 바닷가 풍경은 제주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며, 제주 할망과 아낙들이 좌판을 펴고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모습은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삶의 터전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제주의 근본적인 가치를 경험하는 데 있어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고사리해장국을 빼놓을 수 없다. 화산의 땅 제주에서 물과 곡식이 부족했던 과거, 논농사 대신 제주를 먹여 살렸던 두 가지 작물이 바로 고사리와 메밀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빗물을 저장하는 고사리는 제주 생태계의 시작이자 식재료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독성이 있지만 삶아서 말려 독성과 쓴맛을 제거한 고사리는 제사나 명절에 귀하게 사용되었으며, 먹을 것이 부족했던 제주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컸다.

    고사리해장국은 제주 사람들의 ‘소울푸드’로서, 돼지를 친근한 가축으로 키웠던 제주 문화와 깊이 연결된다. 돼지 뼈로 우려낸 육수에 모자반을 넣으면 몸국, 뼈를 넣으면 접작뼈국, 그리고 고사리를 넣으면 고사리해장국이 되는 방식은 제주 음식 문화의 지혜를 보여준다. 육개장의 고사리처럼 소고기를 대신하는 식감을 제공하며, 메밀가루를 더해 걸쭉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을 완성한다. 겉보기에는 약간 거무튀튀한 빛깔이지만, 구수한 고사리와 메밀의 조화로운 맛은 혀를 부드럽게 자극하며, 제주 사투리로 ‘베지근하다’고 표현되는 깊고 담백한 맛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밥 한 공기를 말아 먹으면 죽처럼 되직해지는 고사리해장국은 입에 걸리는 것 없이 술술 넘어가며, 가난과 통한의 역사 속에서도 이토록 담백하고 유순한 맛을 낳은 제주 사람들의 인내와 지혜를 느끼게 한다.

    유채꽃이 일렁이는 산방산을 바라보며, 그 발아래 엎드린 용머리해안을 떠올릴 때, 오늘만큼은 100만 년 세월을 관통하는 고사리해장국 한 그릇이 제주의 자연, 인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사하게 만드는 음식과 사람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 계좌이체 넘어선 감동과 실질적 편의,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의 재발견

    현금 이체가 당연시되는 시대에, 여전히 현금을 직접 전달해야만 하는 절실한 상황과 특별한 감동을 전하고자 하는 요구는 존재한다. 이러한 간극 속에서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는 단순한 송금을 넘어, 따뜻한 마음과 실질적인 편의를 동시에 제공하는 잊혀진 솔루션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 서비스는 계좌이체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만족감과, 금융 접근성이 낮은 계층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주목할 만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예상치 못한 개인적인 위기 상황에서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는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었다. 8년 전, 주말부부로 지내던 한 공무원은 출근길에 남편이 지갑을 통째로 두고 간 상황에 직면했다.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직장까지 되돌아가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비효율적이었고, 신분증과 카드 등이 담긴 지갑을 택배로 보내는 것 또한 위험 부담이 컸다. 당시에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보편화되지 않아 지갑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어렵던 시기였다. 이러한 긴급한 상황에서, 개인은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를 떠올렸다. 집배원이 직접 현금을 전달하는 방식의 이 서비스는, 수령인 본인 확인 절차가 필요하지만, 이번 경우는 집배원에게 직접 보내는 상황이었기에 신분증 없이도 현금을 전달할 수 있었다. 10만 원을 긴급 상황 발생을 알리는 메모와 함께 보낸 이 사례는,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개인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얼마나 유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는 개인적인 급박한 상황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솔루션으로 기능한다. 경조사에 직접 참석하지 못해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계좌이체로는 다소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때 ‘경조금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며 ‘현금배달’을 선택하면, 현금과 함께 경조 카드를 전달하여 참석하지 못한 미안함과 정성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다. 또한, 고령으로 은행 방문이 어렵거나 은행 점포가 드문 지역에 거주하는 부모님께 매월 용돈을 보내드리는 경우에도 유용하다. 2018년부터 시행된 ‘부모님 용돈 배달서비스’는 한 번의 약정으로 매월 지정된 날짜에 지정된 고객에게 현금을 배달하여, 반복적인 신청의 번거로움을 덜고 편리하게 용돈을 전달할 수 있게 하였다. 나아가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는 복지 정책에도 기여하고 있다. 3월 12일, 우정사업본부는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군 등 4개 지역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하는 지원금을 ‘현금배달 서비스’를 통해 전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금융기관 접근이 어려운 주민,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 및 장애인 등 소외계층이 지원금을 보다 쉽게 수령할 수 있도록 도와 금융 소외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결론적으로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는 단순한 현금 전달 수단을 넘어, 때로는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고, 때로는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며, 또 때로는 사회적 약자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다층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가오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계좌이체 대신 부모님께 직접 현금을 배달해 드리는 것은 숫자로만 이루어진 통장 잔고보다 훨씬 특별한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필요한, 따뜻하고 실질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