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문화/생활

  • 이름 붙여진 ‘몸짓’에서 ‘세계의 감수성’과 접속하기까지: 한류의 지속 가능한 여정

    한류는 단순히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현상을 넘어, 세계가 그 존재를 인식하고 이름을 붙임으로써 비로소 실체가 된 ‘문화적 주체’로 부상했다. 이는 김춘수의 시 ‘꽃’에서 화자가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사물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90년대 후반 중화권 매체에서 ‘한류’라는 명칭이 등장하면서, 한국 드라마와 K팝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정체성을 부여받는 ‘문화적 현상’에서 ‘문화적 실체’로 거듭났다. 이는 한류가 일방적인 전파가 아닌, 세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수용되고 인식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한류의 시작은 ‘정의’와 ‘호명’을 통해 세계와의 관계를 출발시키는 인식론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한류는 단숨에 피어난 것이 아니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가 보여주듯, 한류는 한국 현대사가 겪어온 고통과 기다림, 즉 일제 강점기,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응축된 문화적 승화의 결과물이다. 소쩍새의 울음과 먹구름 속 천둥으로 비유될 수 있는 한국 현대사의 수난과 인고는 한류라는 ‘국화’를 피우기 위한 배경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피어난 한류는 단순한 문화 상품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겪은 모든 시련과 성공, 회복의 총체적인 결정체이며, 존재의 증언이자 시대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오늘날 피어난 한류가 한국 사회 내부의 치유를 위한 것인지, 세계를 향한 몸짓인지, 혹은 그 둘 모두인지를 묻는 것은 중요한 지점이다.

    한편, 김용락 시인의 ‘BTS에게’는 언어를 넘어 마음을 두드리는 K-콘텐츠의 힘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BTS가 ‘LOVE MYSELF, LOVE YOURSELF’라는 메시지를 통해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고,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가슴이 뛰고 인간이 된다”는 진솔한 통찰을 전달하는 것처럼, K-콘텐츠의 진정한 힘은 완성도나 스타일뿐만 아니라 ‘진정성’에 있다. BTS가 자신의 언어로 감정을 고백함으로써 공감을 이끌어내듯, K-팝, K-드라마, K-콘텐츠는 ‘다른 언어로도 마음속을 두드리는’ 능력을 통해 세계를 울리고 있다. 팬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공감의 공동체이자 문화의 공동 창작자로서, K-콘텐츠가 ‘세계의 감수성’과 접속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나짐 히크메트의 시 구절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한류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속의 여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한류는 더 많은 서사, 더 깊은 공감, 더 다양한 목소리를 향해 나아가며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성과에 자만하거나 자족해서는 안 된다. 한류가 추구해야 할 미래상은 단순한 외연 확장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가치, 다문화적 포용, 인간성 회복에 있다. K-콘텐츠는 세계를 향해 말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 안의 진실도 말해야 하며, 외연을 넓히되 내면을 잊지 않을 때 ‘진정한 여행’은 계속될 수 있다. 창·제작자에게는 영감과 상상을, 플랫폼과 유통 현장에는 전략과 방법론을, 연구자에게는 전망과 통찰을, 정책 담당자에게는 기획과 비전을, 그리고 수용자에게는 향수와 감동을 주는 한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 깊은 자부심과 숭고한 가치를 묻다

    직장인 강연에서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흔히 인사팀장이라는 답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단순한 질문 속에 숨겨진 무게감은 종종 간과된다.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 프로젝트 당시, NASA의 한 청소부는 자신을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 짧은 일화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넘어, 자신의 일에 대한 깊은 자부심과 소속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구성원 모두가 이러한 마음으로 일한다면, 어떤 위대한 목표든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다. 어쩌면 감동을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 핵심은 ‘일’에 대한 개인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최근 들어 군 부대 강연 요청이 부쩍 늘었다. 정치적 여론이나 대중의 목소리에 상처받고 좌절하는 군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헌신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과거에는 시간과 비용 효율성을 이유로 강연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지만, 올해는 군 부대에서 보내오는 메일의 간절함과 진정성 때문에 기꺼이 나서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넘어, 우리 사회가 그들의 헌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강연의 시작은 언제나 “군인은 무엇을 먹고 사나요?”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히 물질적인 보상이나 생활 방식을 묻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뛰어드는 군인,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들이 과연 높은 보상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현실적으로 그들이 받는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최고급 쇠고기 일화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쇠고기가 한우든 미국산이든 상관없이 최고 등급이라면 맛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과거 미군 부대에 최고급 쇠고기가 우선적으로 보급된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처럼, 이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들이 그들의 ‘가치’를 인정해 준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미국에서 소방관이 가장 존경받는 직업 1위로 꼽히는 이유 역시 선한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함에 대한 국민적 존경의 표현이다. 군인들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는 그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의 예를 표해야 한다.

    결국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되묻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 사회적 기여, 그리고 숭고한 가치 추구는 단순히 직업의 의미를 넘어 한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 질문 앞에서 우리 자신만의 멋진 스토리를 만들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가치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신영철 교수는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지난 10여 년간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직장인의 정신건강 향상에 힘써왔다. 진료, 방송, 강연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 중이며, 2024년부터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민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과거 직물 산업의 역사를 품은 강화, 소창과 새우젓으로 되살아난 지역 문화

    강화는 오랫동안 역사의 섬, 호국의 섬으로 불리며 그 웅장한 역사적 의미를 간직해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부터 대몽항쟁의 거점, 서구 열강의 침략을 막아온 최전선까지, 섬 곳곳에는 굽이치는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또한, 계절마다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다채로운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강화의 다층적인 매력 중에서도 간과하기 쉬운, 혹은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문화유산들이 있다. 바로 과거 번성했던 직물 산업의 흔적과 이를 상징하는 ‘소창’ 그리고 지역의 독특한 식문화인 ‘새우젓’이 그것이다.

    이러한 지역 문화의 재조명은 강화 지역 내에서 폐 소창 공장을 생활문화센터로 개관하고, 옛 방직 공장 터를 ‘소창체험관’으로 운영하는 노력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이는 과거 강화가 자랑했던 60여 개에 달했던 방직 공장들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시도다. 1933년 ‘조양방직’ 설립 이후 1970년대까지 강화는 수원과 더불어 국내 3대 직물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1930년대에 건축된 한옥과 염색 공장 터를 리모델링한 ‘소창체험관’과 폐 ‘동광직물’을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로 개관한 것은 이러한 과거의 영광을 현재와 연결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고 있다.

    소창은 목화솜에서 뽑아낸 실로 짠 천으로, 과거에는 옷감이나 행주, 기저귀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면화를 수입하며 강화는 이러한 직물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당시 강화읍 권역에만 60여 개의 공장이 운영되며 4,000명에 달하는 직공들이 일했던 시기가 있었을 정도로, 방직 산업은 강화의 경제와 지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12시간 주야간 교대로 먼지 속에서 일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에게 방직 공장 취업은 꿈이었을 만큼 중요한 일자리였다. 이러한 과거의 직물 산업은 강화 왕골로 만든 화문석(꽃무늬 자리, 꽃돗자리)의 명성과도 연결된다. 고려 시대부터 귀하게 여겨져 외국에 수출되고 사신에게 선물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던 강화 화문석을 짜던 사람들의 손길이 방직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은 강화 지역의 섬세한 손재주와 뛰어난 직조 능력을 짐작하게 한다.

    과거 강화의 여인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방직물을 직접 메고 전국을 다니며 ‘방판’이라는 방식으로 판매했다. 중간상인 없이 직접 판매함으로써 더 나은 마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배를 타고 가까운 북한 개풍까지도 오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곁에 두었던 것은 바로 강화 새우젓이었다. 쉰밥이나 찬밥에 곁들일 유일한 찬거리로, 험한 품팔이 길에 요긴했던 새우젓은 그들의 억척스러운 삶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서해안 전 지역에서 젓새우가 잡히지만, 강화는 드넓은 갯벌과 한강, 임진강이 만나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새우의 서식 환경이 뛰어나며, 이로 인해 강화 새우젓은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깊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전국 새우젓 물량의 70~80%를 차지할 정도로 강화 새우젓은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늦가을 김장철이면 이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섬이 들썩일 정도다.

    이러한 강화 새우젓의 풍미는 지역 향토 음식인 ‘젓국갈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젓국갈비는 이름에서 ‘갈비’가 붙었지만, 사실상 주인공은 새우젓이다. 돼지고기에서 나오는 기름기와 더불어 새우젓 특유의 짭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풍미가 배추, 호박, 두부 등 다른 재료들의 맛을 조화롭게 끌어올린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은 인공적인 조미료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새우젓만이 선사할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다. 이는 “대미필담(大味必淡)”, 즉 정말 맛있는 음식은 반드시 담백하다는 미식의 경지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강화에는 몇 개의 젓국갈비 가게가 성행하고 있으며, 새우젓의 미미한 감칠맛이 맛의 한 끗을 좌우하는 뛰어난 집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강화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에서의 체험은 과거 강화의 직물 산업 역사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억척스러운 여성들의 삶과 그 삶을 풍요롭게 했던 새우젓,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젓국갈비와 같은 지역 고유의 식문화를 깊이 이해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과거의 유산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을 넘어, 현대적인 체험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그 가치를 재발견하고 확산시키는 노력이 강화의 지역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 사라져가는 추억 속 보물, ‘우표’의 잃어버린 위상을 되찾기 위한 노력

    5월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과거 모두의 즐거움이었던 우표 역시 예전의 찬란했던 위상을 잃어버린 채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손편지가 희소해지고 디지털 소통이 보편화되면서 우표를 보거나 우표 수집가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현실은, 다양한 매력을 지닌 우표의 가치가 퇴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어린 시절, 방학 숙제를 위해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와 함께 애지중지 모아두었던 우표로 책받침을 만들었던 추억은 이제 30여 년 전의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1990년대에는 아이들조차 ‘취미는 우표 수집’이라고 말할 정도로 우표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날이면 새벽부터 우체국 앞에 장사진을 이루었던 모습은, 빵을 사면 나오는 캐릭터 스티커를 모으던 최근의 유행에 비견될 만큼 뜨거웠던 당시 우표의 위상을 짐작게 한다.

    이처럼 사라져가는 우표의 매력을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표는 부피가 작아 보관이 용이하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부담 없이 소장할 수 있으며, 매년 다양한 디자인의 기념우표 발행으로 수집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국내 우표만으로 부족함을 느낀다면 해외 우표로 시선을 돌려 얼마든지 수집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표는 여전히 충분히 매력적인 취미로 남아있다. 우표는 크게 우편요금 납부를 주목적으로 발행량이 정해지지 않은 ‘보통우표’와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되며 발행량과 기간이 정해져 있어 희소성을 지닌 ‘기념우표’로 구분된다.

    대한민국 기념우표는 우정사업본부의 고시에 따라 매년 국내외 주요 행사, 인물, 자연, 과학기술, 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선정하여 연간 10~20회 정도 발행된다. 2025년에는 총 21종의 기념우표 발행이 계획되어 있으며, 지난 5월 8일에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사랑스러운 아기’ 기념우표가 발행되어 주목받기도 했다. 더 나아가, 우정사업본부의 기념우표 외에도 각 지방의 우정청이나 우체국,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자체적으로 기념우표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1주년을 기념하여 강원지방우정청과 강원일보사가 협력하여 발행한 우표첩 ‘찬란한 강원의 어제와 오늘’은 강원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낸 소중한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호평을 이끌어냈다. 또한, 지난해 태백우체국에서 발행한 ‘별빛 가득한 태백 은하수 기념우표’와 올해 4월 양구군에서 발행한 ‘양구 9경 선정 기념우표’는 강원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아내며 단순한 수집품을 넘어 지역 홍보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처럼 다양한 매력을 지닌 우표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현재에 이르러 그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한때 모두의 즐거움이었던 우표가, 다시금 현재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외부의 찬사로 되살아난 문화, 한국 정체성 재확인의 계기

    문화의 생명력은 순환과 회귀를 통해 유지되며, 이 과정에서 정체성의 재구성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살아 숨 쉰다. 때로는 본국에서 잊히거나 외면받았던 문화가 해외에서 재발견되어 빛을 발하고 다시 돌아오는 ‘문화 역수입’ 현상이 이러한 순환의 중요한 한 국면을 장식한다. 아르헨티나의 탱고, 일본의 우키요에, 그리고 한국의 판소리, 막걸리, 나아가 한류 콘텐츠까지, 이러한 사례들은 단순히 인기의 역전 현상을 넘어 문화 정체성의 회복과 문화 정책의 방향성을 되묻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문화 역수입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배경에는 종종 자국 문화에 대한 집단적 콤플렉스나 자신감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것’에 대한 스스로의 인정보다는 외부의 찬사를 통해 그 가치를 뒤늦게 깨닫는 경향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형성된 자학 사관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심리는 외부의 평가를 통해 자국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인정욕구와 맞물려, 해외의 반응을 거울 삼아 내부 자산을 재해석하고 구조화하는 문화적 자기 확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문화 역수입 사례인 아르헨티나의 탱고는 19세기 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층민 오락으로 시작했지만, 20세기 초 유럽 상류층에 의해 그 관능적인 리듬과 감정의 밀도가 발견되면서 예술로 승화되었다.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의 성공 이후 자국 내에서 재평가받은 탱고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아르헨티나 문화유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본의 우키요에 역시 19세기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 포장재로 사용되었던 것이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에게 발견되면서 파격적인 구도와 색채로 주목받았고, 이는 일본 내에서도 우키요에에 대한 재평가를 불러일으켰다. 고흐, 모네 등 유럽 거장들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준 우키요에는 ‘자포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문화의 미학적 가치를 세계사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는 한국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동남아, 중남미 등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 고유의 정서와 가족주의, ‘K-신파’적 감수성을 재조명했다. ‘감성 중심의 한국형 정서 서사’로 설명되는 이 작품은 해외에서의 뜨거운 감동을 통해 국내 시청자들에게 ‘우리가 간직하고 있던 감정의 DNA’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눈물, 헌신, 어머니와 고향, 세대 간의 화해와 같은 서사가 ‘K-가족주의’로 불리며 강인한 여성 서사로도 주목받은 이러한 ‘정서의 수출’은 한국적 정체성의 확인으로 이어졌다. K-팝과 드라마의 전개 과정에서 대체로 해외에서 먼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이후 국내 언론과 정책 차원에서 ‘국가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한류가 ‘수용’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자국 내에서 의미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화의 지속성은 외연의 확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순환과 회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정체성의 재구성이 중요하다. 문화 역수입은 이러한 순환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주며, 미래의 문화는 이 회귀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달려 있다. 되돌아온 문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해외 입양’시키듯 외면하지 않고, 그 가치를 미리 알아보고 우리 안에서 제대로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 쓰레기 소각장에서 문화 예술 공간으로, 부천아트벙커B39의 극적인 변신

    쓰레기 처리장이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하는 놀라운 변화를 겪은 부천아트벙커B39의 사례는, 오래 견뎌내야만 비로소 가치를 발휘하는 것들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과거 가난과 허기를 이겨내며 개발을 견인했던 산업 시설들이 이제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어떤 사회적, 환경적 문제들이 놓여 있었는지, 그리고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분석이 될 것이다.

    기사 은 먼저 50년 전 부천의 역사적 맥락을 짚으며 현시대와는 사뭇 다른 도시의 모습을 그려낸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부천은 수도권의 강력한 배후 도시로서 급격한 인구 증가를 경험하며 많은 서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 당시 아남산업, 삼성전자 반도체, 로켓트보일러공장 등 2,000여 개의 공장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따라 부천으로 몰려들었고, “지상에서 내 집 한 칸 마련하겠다”는 희망을 품은 이들에게 부천은 기회의 땅이었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며 부천 원미동은 가난 속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의 터전이자, 슬픔 속에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그려졌다. 이는 당시 도시 개발의 이면에 존재했던 사회적 배경과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발생한 또 다른 사회적, 환경적 문제들이 있었다. 바로 1992년, 부천 중동 신도시 건설과 환경부 지침에 따라 삼정동에 설치된 쓰레기 소각장이 그 중심에 있다.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된 이 소각장은 하루 200톤씩 서울과 수도권의 쓰레기를 처리하며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특히 1997년, 환경부 조사 결과 허가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고농도 다이옥신이 검출되면서 마을 주민들과 환경 운동가들은 소각장 폐쇄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한 문제 제기는 결국 신뢰 회복을 어렵게 만들었고, 2010년 대장동 소각장으로 폐기물 소각 기능이 이전되면서 삼정동 소각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버려지고 폐기될 운명이었던 이 시설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되살아났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2018년 복합문화예술공간 ‘부천아트벙커B39’로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이 공간은 과거 쓰레기를 태우던 거대한 굴뚝과 소각로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쓰레기 저장조였던 벙커(BANKER)는 ‘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되는 핵심 공간이자 ‘에어갤러리(AIR GALLERY)’로 탈바꿈했다. 하늘과 채광을 끌어들여 다양한 각도와 높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이 공간은, 과거 쓰레기들이 온전한 모습을 바라보던 마지막 관문이자 ‘관’이었던 장소가 이제는 빛나는 예술 작품들을 담는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쓰레기 반입실은 멀티미디어홀(MMH)로, 펌프실, 배기가스처리장, 중앙청소실 등은 아카이빙실 등으로 리모델링되어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현대적인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부천아트벙커B39의 변모는 단순히 낡은 산업 시설을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RE:boot 아트벙커B39 아카이브展’은 다이옥신 파동과 시민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소각장이 어떻게 주민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하게 되었는지 그 생생한 역사를 전달하며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건물 외벽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숲이 그린 이야기’는 동네 어린이들의 작품으로, 소각장을 상징하는 굴뚝 모양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소리와 색으로 가득한 숲을 이룬다는 을 담고 있다. 이는 과거 환경 오염의 상징이었던 공간이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과 창의성의 공간으로 재탄생했음을 시사한다.

    한편, 부천의 또 다른 상징적인 음식 문화인 감자탕과 뼈다귀해장국은 개발도상국의 애환이 담긴 음식으로서 그 가치를 더한다. 미군에서 버려지던 돼지 뼈다귀가 유통되고, 알감자를 닮았다고 해서 ‘감자탕’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은 당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음식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온 사람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현재는 수입 돼지고기의 발달로 뼈다귀에 붙은 살이 더욱 풍성해져, 저렴한 가격으로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다. 특히 1988년 부천 원미동에서 창업한 가게의 깍두기는 시원하고 달큼하며, 뼈다귀해장국 국물은 맑고 깨끗하여 입술에 달라붙는 기름진 국물이 아닌 산뜻한 맛을 선사한다. 이러한 음식들은 ‘가난과 허기를 이겨낸 지혜의 음식’으로서 이제는 일상이자 가벼운 별식이 되었으며, 외국인들에게도 K-푸드의 매력으로 다가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부천아트벙커B39와 감자탕, 뼈다귀해장국으로 대표되는 부천의 이야기는 과거의 어려움과 문제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인간과 도시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쓰레기 소각장이 문화 공간으로, 그리고 가난의 산물이었던 음식이 별식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견뎌내고 노력한 결과들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과거의 유산들이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 토니상 6관왕, ‘어쩌면 해피엔딩’ 넘어 ‘한류 30년’의 거대한 물음표

    최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토니상 6관왕이라는 쾌거를 달성하며 한류의 눈부신 성과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는 그동안 한국 콘텐츠가 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 등을 수상하며 EGOT(Emmy, Grammy, Oscar, Tony Awards)를 완성해 나가는 흐름 속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28년 전 중국에서 시작된 한류의 태동을 되돌아보는 것은 한국 대중문화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류의 정확한 시작점을 두고 학계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존재한다. 가장 유력한 설 중 하나는 1997년 6월 15일 중국 CCTV에서 방영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기원으로 보는 것이다. 1991년부터 1992년까지 국내에서 최고 시청률 64.9%를 기록했던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 평균 시청률 4.2%, 평균 시청자 수 1억 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한류 열풍의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K팝을 향한 관심이 점차 증대되고 있었고, 이는 ‘한한령’과 같은 국제적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BTS, 블랙핑크,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세계적인 킬러 콘텐츠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사랑이 뭐길래> 외에도 한류의 원년을 주장하는 다른 설들이 존재한다. 1993년 드라마 <질투>의 중국 방영, 1994년 영화 <쥬라기 공원> 관련 슬로건 등장으로 인한 대중문화 콘텐츠 산업 인식 변화, 1995년 SM 엔터테인먼트 출범, CJ ENM 영상 산업 진출, 뮤지컬 <명성황후> 초연, SBS 드라마 <모래시계> 방영 등이 그 예다. 또한 중국 언론이 ‘한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1999년 11월 19일을 기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 가운데,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된 1997년 설이 화제성, 상징성, 영향력 면에서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사랑이 뭐길래>를 한류의 기원으로 볼 경우, 한류의 역사가 아직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라는 의미와 함께 시대 구분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23년부터 ‘한류 30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0.7퍼센트의 반란’, ‘단군 이래 최대 이벤트’를 이룬 한국인의 인정 욕구와 맥을 같이 한다. 마크 피터슨 교수가 지적했듯이, 한류는 한국 전통의 창조적 천재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난과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사랑이 뭐길래>의 중국 방영 당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중국의 수용은 서구 문화에 대한 경계심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 문화를 선택한 측면이 있었다. 이는 ‘문화할인율이 낮은 한국 대중문화를 대체재로 소비한다’는 필자의 과거 진단과 일치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한류와 K-콘텐츠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는 문화 콘텐츠 현장에서 창·제작자들이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이며, 한류의 세계화는 더 이상 특정 국가의 정치적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6관왕이라는 현재의 성과는 28년 전, 중국에서 점화된 한류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그날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폄하되기도 했던 한국 드라마와 가요는 K-콘텐츠의 완성도와 보편적 소구력, 그리고 내부 경쟁 속에서 형성된 강력한 제작 역량을 증명했다. 이후 <겨울연가>, <대장금> 등을 거쳐 <기생충>, <오징어 게임>으로 폭발하고, K팝 역시 BTS, 블랙핑크 등으로 이어지며 불멸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류 30년’이라는 시점은 한국 대중문화의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 게임 산업, ‘문화강국 도약’ 위한 인식 전환과 지원 확대 절실

    대한민국이 세계 3위의 게임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게임 산업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국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15일, 게임업체 크래프톤의 복합 문화 공간인 ‘펍지 성수’를 방문하여 ‘세계 3위의 게임강국으로 레벨업’이라는 주제로 현장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는 게임사 대표, 게임 음악 및 번역 전문가, 청년 인디게임사 대표, 게임인재원 학생 등 다양한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게임 산업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 시작에 앞서 인공지능(AI) 기반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인 ‘인조이’를 직접 체험하며 게임의 몰입도와 현실 세계와의 연관성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 게임 내 재화 획득을 위한 노동 시간 등에 대해 질문하며, 게임이 단순한 가상 세계를 넘어 현실 경제 및 사회 구조와도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문화산업 국가로 만들자”고 선언하며, 문화산업의 중요한 축으로서 게임 분야의 잠재력을 강조했다. 그는 게임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과 마인드 셋이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며, 게임에 대한 몰입도를 단순한 오락이 아닌 산업적인 관점에서 재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게임 산업을 국부 창출과 일자리 마련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게임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탄력적 노동시간 운영’에 대해 이 대통령은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양면이 있다”고 언급하며, 개발자와 사업자의 요구와 더불어 고용된 노동자들이 혹여라도 소모품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정책 판단의 핵심 과제로서, 노동 시간 문제에 있어 양측의 의견을 모두 반영하여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함을 시사한다.

    이어진 비공개 토의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산업 진흥 방안들이 논의되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주변국과의 경쟁 심화 속에서도 AI 기술 등을 활용하여 작은 회사들의 창의력을 증대시킬 기회가 생기고 있음을 강조하며, 게임 산업으로서의 진흥 필요성을 피력했다. 김정욱 넥슨 대표는 게임을 전략 품목으로 삼아 혁신을 통한 글로벌 진출을 위해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인디게임 업체 원더포션의 유승현 대표는 “작은 규모의 지원이라도 보다 많은 팀들에게 제공되면 효과적일 수 있다”며 현실적인 지원 확대 방안을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함께 노동 시간 집약적인 작업의 특성, 문화 콘텐츠 수출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 미래 성장 가능성, 원작 저작권 및 멀티 유즈(다중 활용) 여부 등을 꼼꼼히 짚어가며 지원 확충이나 규제 완화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격의 없이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논의들은 대한민국 게임 산업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반구천 암각화, 6000년의 ‘수몰 위협’ 끝에 유네스코 등재… 미래 유산 보존의 과제

    반세기 전,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며 한국 선사 역사 연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던 반구천 암각화가 15년간의 잠정 목록 등재를 거쳐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번 등재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6000년 역사를 품은 이 거대한 바위가 과거 ‘수몰 위협’에 시달렸던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근본적인 보존 및 관리 방안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970년 12월 24일, 신라 승려 원효대사의 흔적을 찾던 문명대 교수는 울산 언양의 절벽에서 한국 최초의 암각화인 천전리 암각화를 발견했다. 이듬해인 1971년 12월 25일에는 인근 대곡리에서 고래, 사슴, 호랑이 등 다양한 동물과 사냥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 또 다른 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졌다. 초기에는 이 두 암각화를 묶어 ‘반구대 암각화’로 불렀으나, 현재는 ‘반구천 암각화’로 통칭하며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천전리 암각화는 청동기 시대, 대곡리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순서가 뒤바뀌어 발견된 이 유적들은 선사 시대부터 6000년에 걸쳐 이어져 온 인간의 상상력, 예술성,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을 바위 위에 새긴 ‘역사의 벽화’로 평가받는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반구천 암각화에 대해 “선사 시대부터 6000여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라고 극찬하며,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또한 “선사인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이라는 수식어는 이 암각화가 지닌 사실성, 예술성, 창의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천전리 유적에는 높이 약 2.7m, 너비 10m 바위 면을 따라 620여 점의 추상적 문양과 신라 시대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대곡리 암각화에는 새끼 고래를 이끄는 무리, 작살에 맞아 끌려가는 고래, 호랑이·사슴 등의 육지동물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놀라운 유적들은 고미술학계에서 ‘크리스마스의 기적’ 또는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반구천 암각화는 지난 반세기 동안 댐 건설로 인한 수몰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려왔다. 잦은 가뭄으로 암각화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늘었지만, 기후변화와 댐 운영의 변수는 여전히 ‘반구천’을 ‘반수천(半水川)’으로 되돌릴 수 있는 잠재적 위협으로 남아있다. 물속에 잠긴 유산은 세계유산의 자격을 잃을 수 있으며, 등재 이후의 보호·관리 계획이 부실할 경우 유네스코는 등재를 철회할 수도 있다. ‘기적의 현장’이 ‘수몰의 현장’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진정한 과제는 이제부터다. 울산시는 ‘고래의 도시’를 표방하며 고래 축제 개최 등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암각화를 단순히 보존하는 것을 넘어 체험형 테마공원, 탐방로, 교육 프로그램, 워케이션 공간을 포함하는 생동하는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이번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AI 기반의 스마트 유산관리 시스템, 암각화 세계센터 건립 등 미래형 전략도 추진될 전망이다. 그러나 관광 인프라 구축이라는 명분 아래 생태 환경이 훼손되거나 과잉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유산의 본질을 배반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보존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사 시대의 시스티나 성당’이라 불리는 라스코 동굴은 1963년 일반 공개 이후 훼손 문제로 진본 동굴을 폐쇄하고 재현 동굴과 디지털 복제본을 통해 관람하도록 하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 역시 2002년 이후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훼손으로 전면 폐쇄되었으며, ‘새 동굴’이라는 정밀 복제 동굴을 통해 교육 및 관광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유적은 문화유산의 공개와 보존 간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며, 결국 복제품을 통한 ‘간접 관람’ 방식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문화유산은 원본이 주는 ‘아우라’가 가장 중요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후대에 온전히 물려주어야 할 책임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 현대 기술은 3D 스캔, 디지털 프린트, AI 제어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여 이러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반구천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의 꿈은 유네스코의 이름으로 되살아났지만, 이제 이 거대한 바위의 장엄한 서사는 인류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로 승화되기 위해,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지기 위한 적극적인 보존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폭염과 폭우 속, 서점은 ‘길 위의 인문학’으로 지친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다

    올여름,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갑작스러운 폭우는 많은 이들의 몸과 마음에 무기력함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이상기후 현상 속에서 일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는 커지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즉각적인 여행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독립 서점 ‘가가77페이지’에서 진행하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은 지친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은 본래 전국 곳곳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올해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독립 서점 ‘가가77페이지’는 이러한 사업이 서점에서도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SNS를 통해 참여자 모집에 나섰다. ‘가가77페이지’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은 <영화로 보는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7월 21일(월)부터 총 10회에 걸쳐 진행된다. 필자는 평소 인문학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프로그램을 10회기 모두 신청하며 여름의 지친 일상에서 벗어날 알찬 계획을 세웠다.

    ‘가가77페이지’는 망원시장 인근에 자리한 독립 서점으로, 단순한 책 판매 공간을 넘어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 이상명 대표는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밭과 이해를 할 수 있는 마음의 밭을 넓히는 것에 있다”고 설명하며, “어렵게만 느껴지는 인문학적 주제들을 친숙한 영화를 바탕으로 연 뒤, 영화와 관련된 철학, 문학 서적들을 통해 깊이 있게 다가가는 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특히, 참여 대상의 폭을 넓히기 위해 선정된 영화의 관람 등급을 12세 이상(일부 영화는 15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고자 노력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25 길 위의 인문학’ 커리큘럼의 자세한 은 인문360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영화로 보는 인문학> 프로그램은 이지혜 영화평론가와 이인 작가가 공동으로 진행하며, 첫 회차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관람한 후 진행자의 강연과 인문학적 사유를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영화의 주제인 자아 탐구와 교육의 본질은 참여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영화 속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이라는 말을 건네듯, 참여자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현재에 충실하고자 하는 다짐을 새기기도 했다.

    이상명 대표는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이 주는 의미에 대해 “매주 월요일 저녁이 기다려진다. ‘길 위의 인문학’에 참여하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서점이 단순한 책 판매 공간을 넘어 사람들과 교류하고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또한,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인문학의 위기가 아닌 오히려 활용 영역을 넓힐 기회라고 강조하며, 인문학적 사고가 AI와 접목될 때 효율성과 합리성을 넘어선 도덕적인 사고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프로그램 참여자인 박근주 씨는 SNS를 통해 ‘가가77페이지’의 소식을 접하고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단순히 영화와 책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속에 담긴 인문학적 사유를 자신의 삶에 연결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또한, 인문학은 짧은 기간에 끝나는 지식이 아니라 꾸준한 성찰과 대화를 통해 깊어지는 분야이기에, 프로그램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희망했다.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도서관협회가 공동 주관하며 ‘우리 동네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있다. 이는 인문학과 지역 문화, 책과 길, 저자와 독자, 그리고 공공도서관과 지역 주민이 만나는 새로운 독서 문화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가가77페이지’에서 확인된 이러한 만남의 장은,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인문학을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며, 참여자들에게는 지친 일상 속에서 벗어나 자신을 성찰하고 삶의 리듬감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전국 각지에서 이어질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은 인문학이 결국 자신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지역 서점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