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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음으로 더위 쫓던 옛 추억, 부산 ‘할매 빙수’에 담긴 깊은 사연

    더운 여름, 기계에서 쏟아지는 얼음 알갱이만 봐도 더위를 잊게 만들었던 빙수의 존재는 실로 신비로운 것이었다. 과거 여름철이면 방송사마다 시원함을 받아들인다는 뜻의 ‘납량’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음식으로 더위를 식히는 데는 빙수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십 원짜리 빙수부터 즐겼던 어린 시절, 학교 앞 무허가 분식집이나 만화가게에서 에펠탑 모양의 주물 수동 빙수기계로 만든 얼음 한 그릇은 1970년대의 흔한 풍경이었다. 손잡이를 돌려 깎아낸 얼음에 색소가 든 시럽을 뿌려주던 그 모습은 돈이 없어 사 먹지 못해도 침을 흘리며 구경하던 진풍경이었다.

    더 나아가 시내의 제과점에서는 우유와 연유를 듬뿍 넣고 얼음을 곱게 갈아 만든 팥빙수와 ‘후루츠칵테일’ 빙수를 맛볼 수 있었다. 동네 빙수와는 차원이 다른 고급스러운 맛으로, 산처럼 쌓은 얼음이 금세 허물어지듯 녹아내리는 모습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눈꽃 빙수’가 등장하며 빙수는 더 이상 여름 전용 음식이 아닌 사계절 별미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빙수 전문 카페와 호텔에서 경쟁적으로 고급 빙수를 선보이며 우리는 그야말로 ‘빙수 왕국’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빙수의 중심지는 단연 부산이라 할 수 있다. 부산에는 광복동과 용호동에 빙수 거리가 조성되어 있으며, 국제시장에서는 빙수 한 그릇을 맛보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왜 부산이 빙수의 도시가 되었을까. 이곳 주인들의 설명에 따르면, 생선을 얼려 보관하기 위해 얼음이 필수적이었고, 자연스럽게 빙수가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빙수에 대한 갈증도 한몫했을 것이다. 부산에는 비싸고 화려한 빙수도 존재하지만, 시민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수수하고 담박한 옛날 방식의 빙수다.

    부산의 국밥처럼 빙수에도 ‘할매’라는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이름만 들어도 구미를 당기게 하고 푸근하게 한 그릇을 비우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부산 빙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불필요한 고명은 올리지 않는다. 대신, 팥을 아낌없이 듬뿍 얹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전국을 석권하고 당시 빙수의 첨단으로 여겨졌던, 얇게 깎아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식감의 ‘눈꽃 빙수’의 원조가 부산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필자는 소박하고 투박한 부산식 ‘할매 빙수’를 더 선호한다. 너무 달지 않은 팥이 마치 할머니의 정을 느끼게 하듯 얼음 위에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 그 빙수는 단순한 간식이나 디저트를 넘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필자의 친구는 더운 여름이면 냉면을 먹기 위해 몇 시간씩 차를 몰아 대도시로 향하곤 한다. 냉면을 다 먹고 아쉬운 마음에 팥빙수 한 그릇을 사 먹기도 하는데, 얼마 전 그에게서 재미있는 문자가 왔다. “내가 서울 살 때 동빙고동에 살았잖니. 조선시대 얼음 창고가 있었다는 동네 말이야.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에는 겨울이면 한강에 불려나가서 얼음 부역을 했다잖니. 팥빙수 그릇 앞에 두고 있으면, 왜 그 생각이 나는지 몰라. 나도 늙어간다 야.”

    조선시대에는 한강에서 얼음을 캐어 강가의 서빙고와 동빙고에 저장했다가 여름이 되면 궁으로 옮겨 사용했다. 당시 얼음은 왕이 먹는 음식 재료의 부패를 막기 위한 냉장고의 역할을 했으며, 서민들이 얼음을 볼 수 있는 것은 겨울에만 국한된 일이었다. 여름철 얼음은 궁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이었고 상상 속의 물체였다. 이처럼 얼음의 귀함을 옛이야기를 통해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얼음으로 만든 최고의 음식인 팥빙수를 맛보기 위해, 여름이 저물기 전에 부산으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 80억원 기금 약정, 건국대 인문학 명맥 잇는 K-CUBE 조성 난항 해소

    건국대학교가 인문학 진흥을 위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으나, 핵심 시설 구축에 대한 난항이 지속되어 왔다. 특히,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인문학 연구와 공연 활동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 공간의 부재는 그동안 연구 환경 저해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건국대학교는 15일 오전 11시, 인문학관 강의동 1층 로비에서 ‘영산 김정옥 이사장 인문학-공연시설 조성기금 약정식’을 개최하며 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번 약정식은 김희경유럽정신문화장학재단 김정옥 이사장이 80억원의 발전 기금을 약정함에 따라 마련되었다. 이 기금은 건국대학교 내에 인문학 연구 및 공연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인 K-CUBE를 조성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K-CUBE는 단순한 강의실이나 연구실을 넘어, 인문학의 깊이를 탐구하고 그 성과를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의 분산된 시설로는 달성하기 어려웠던 인문학 교육 및 연구의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 80억원 규모의 기금 약정은 건국대학교 인문학 분야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옥 이사장의 통 큰 결정으로 조성될 K-CUBE는 척박했던 인문학 연구 환경에 활력을 불어넣고, 창의적인 인재 양성을 위한 최적의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이를 통해 건국대학교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재조명하고, 학문적 성과는 물론 문화 예술의 발전까지 견인하는 복합 문화 허브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여름의 풍취, ‘추억의 빙수’에서 ‘빙수 왕국’까지, 그 변천의 의미

    찬 바람이 불어야 제맛이라는 평이 무색하게, 십 원짜리 빙수가 여름날의 더위를 쫓던 시절이 있었다. 70년대 학교 앞 무허가 분식집이나 만화가게에서 에펠탑 모양의 주물 빙수 기계로 만든 팥빙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십 전을 만지작거리며 침을 흘리던 간절함 그 자체였다. 기계에 얼음을 갈아 쏟아내는 사각거리는 소리, 색색의 시럽이 뿌려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더위를 잊게 하는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당시 빙수는 여름철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제작했던 ‘납량특집’ 프로그램처럼, 시원함을 선사하는 특별한 존재였다. 한 맺힌 귀신 이야기가 더위를 오싹하게 쫓아주었다면, 음식으로서의 빙수는 혀끝으로 전해지는 시원함으로 그 역할을 대신했다. 10원짜리 빙수는 손잡이를 돌려 수북이 쌓인 얼음 위에 달콤한 시럽을 뿌려주는 그 소박한 과정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주었다.

    시내 제과점에서 맛볼 수 있었던 팥빙수나 ‘후루츠칵테일’ 빙수는 동네 빙수와는 차원이 다른 고급스러움을 선사했다. 우유와 연유를 듬뿍 넣어 곱게 간 얼음은 혀 위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고, 산처럼 쌓였던 얼음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은 잠시나마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이처럼 빙수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그 시대의 풍요와 낭만을 담고 있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빙수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눈꽃 빙수’라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며 여름 전용 메뉴에서 사계절 별미로 진화한 것이다. 이후 빙수 전문 카페가 속속 등장했고, 호텔에서는 경쟁적으로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빙수를 선보이며 ‘빙수 왕국’이라 불릴 만큼 빙수의 위상이 높아졌다.

    이러한 빙수의 역사 속에서 부산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국제시장, 광복동, 용호동 등 부산 곳곳에는 빙수 거리가 형성되어 있으며, 특히 국제시장의 빙수는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부산 빙수가 특별한 이유는 그 푸짐함과 담박함에 있다. 부산 빙수는 군더더기 없이 팥을 푸짐하게 얹어내는 것을 특징으로 하며, 이는 마치 할머니의 정을 느끼게 하는 푸근함을 선사한다. 전국적으로 인기를 끈 ‘눈꽃 빙수’의 원조가 부산이라는 설도 있지만, 소박하고 투박한 부산식 ‘할매 빙수’는 간식이나 디저트를 넘어 한 끼 식사처럼 든든함을 채워준다.

    부산 빙수의 뿌리는 조선시대 얼음 저장고였던 서빙고와 동빙고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얼음은 궁에서만 귀하게 쓰이던 귀한 자원이었으며, 일반 서민들은 겨울에만 잠시 얼음을 볼 수 있었다. 한강에서 얼음을 캐 강가에 저장했다가 여름에 궁으로 날라 차가운 음료를 만들거나 식재료의 부패를 막는 용도로 사용했던 역사는 얼음이 얼마나 귀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이러한 얼음의 귀한 가치는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빙수 한 그릇에 담겨, 과거와 현재를 잇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결국, 여름을 저물기 전에 부산의 ‘할매 빙수’를 맛보는 것은 단순히 시원함을 찾는 것을 넘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우리 음식 문화의 정취를 느끼는 여정이 될 것이다.

  • ‘대한민국 관문’ 인천공항, K-컬처 체험으로 외국인 관광객 사로잡는다

    다가오는 10월 연휴를 앞두고 인천국제공항의 이용객이 역대 최대 규모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천국제공항은 단순히 쾌적하고 세계적인 시설을 넘어,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며 ‘대한민국의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다시 불고 있는 한류 열풍과 맞물려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인천국제공항의 노력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스마트패스, 도심공항터미널, 공항 내 편의시설 등 편리한 시스템 구축과 더불어, 인천국제공항은 한국 전통문화의 매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공항 곳곳에는 국내외 작가 14명이 참여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이종경, 박종빈, 최종원 작가의 ‘하늘을 걷다’와 같이 공항이라는 공간의 특성과 한국의 미를 결합한 작품들은 여행객들에게 떠나고 싶은 설렘을 선사한다.

    정적인 전시 외에도 역동적인 공연 프로그램 역시 눈길을 끈다. 매주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오전 10시, 11시, 오후 1시에 전통 예술 공연이 펼쳐지며,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왕가의 산책이 진행된다. 왕가의 산책 프로그램은 조선시대 궁중 생활을 생동감 넘치게 재현하여, 전통 복장을 갖춘 왕과 호위군관들의 등장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최근에는 K-pop 콘텐츠를 패러디한 ‘왕가 보이즈’, ‘공항 보이즈’ 영상이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젊은층의 흥미를 유발하기도 했다.

    여행객들이 더욱 생생하게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한국전통문화센터’는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과 2터미널에 총 네 곳에 위치해 있다. 비록 탑승동 진입이 필수인 만큼 출국 예정자에 한해 이용 가능하지만, 이곳에서는 우리 전통 공예품과 문화상품을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복과 족두리를 직접 입어보는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은 내외국인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으며, 매듭 장신구 만들기, 전통 팽이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해 한국 관광을 준비하는 외국인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인 관광객은 한국 여행 중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출국 전 공항에서도 관련 콘텐츠를 만나 반가웠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천국제공항은 현대적인 편의 시설과 함께 한국 전통문화라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다가오는 긴 연휴, 해외 출국길에 오르는 여행객이라면 인천국제공항 속 숨겨진 전통문화의 매력을 경험하며 더욱 특별한 여행의 시작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 자부심을 잃어버린 시대, 존재의 이유를 묻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자신만의 멋진 대답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현시대 많은 구성원들이 ‘일’에 대한 근본적인 동기 부여와 자부심을 잃어버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직장인 대상 강연에서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인사팀장입니다”와 같은 직무 명칭으로 답하는 현실은, 자신의 업무가 단지 명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내포해야 함을 간과하게 만든다. 이는 마치 1969년 아폴로 11호 프로젝트 당시, NASA의 청소부가 “저는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자부심을 느꼈던 모습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당시 청소부의 대답은, 프로젝트의 성공이 구성원 모두의 마음가짐에 달려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이며, 이는 감동적인 이야기의 허구를 넘어 ‘일’에 대한 개개인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한다.

    최근 군대에서 강연 요청이 부쩍 늘어난 현상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정치와 무관하게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헌신해 온 많은 군인들이 여론이나 대중의 목소리에 상처 입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아, 일선의 군인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부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힐링 강좌’에 대한 간절한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예년 같았으면 시간과 비용 면에서 비효율적이라 거절했을 군부대 강연이지만, 올해는 그들의 간절함과 진정성에 응답하여 여러 차례 강연을 진행했다. 군 부대 강연 역시 “군인은 무엇을 먹고 사나요?”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는 단순히 물질적 보상이 아닌, 군인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와 가치를 묻는 질문이다. 소방관들이 목숨을 걸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이유가 단순히 많은 보상 때문이 아니듯, 군인들 역시 그러한 숭고한 직업 의식을 바탕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이러한 헌신과 희생에는 반드시 그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회적, 국가적 지지가 뒤따라야 한다. 미국에서 소방관이 가장 존경받는 직업 1위인 것처럼, 이는 국민들이 선한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함에 존경을 표하기 때문이다. 군인들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 국민들은 그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표해야 한다. 과거 미군 부대에서 최고급 쇠고기를 군인들에게 보급했다는 이야기는, 국가가 군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최고의 대우를 제공하려 노력했다는 방증이며, 이는 군인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한 직무 명칭을 넘어 자신의 일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자부심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될 때,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하고 의미 있는 ‘일’의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남편의 퇴직, ‘부부 갈등’이라는 보이지 않는 절벽에 서다

    퇴직 이후 찾아오는 황혼의 시간이 기대와 달리 부부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많은 퇴직자들이 예상치 못한 ‘갈 곳 없음’의 절벽 앞에서 망연자실하며, 이는 곧 부부간의 불편함과 갈등으로 이어져 중년·황혼 이혼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노후 설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부부 갈등의 배경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특유의 ‘분단된’ 부부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현역 시절 남편과 아내는 각자 자신의 세계에서 생활하며 배우자의 사정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은 회사 일에, 아내는 가정과 자녀 양육, 그리고 이후 개인적인 활동에 집중하며 각자의 삶을 영위해왔다. 그러나 남편이 퇴직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평일 낮 시간 대부분을 집에 머물게 되는 남편은 이전에는 몰랐던 성격이나 생활 습관이 아내에게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며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 혹은 ‘부원병’이라 불리는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이러한 현상이 사회 문제화되어, 남편 퇴직 후 부부 갈등으로 인한 중년·황혼 이혼 비율이 1990년 14%에서 2023년 23%로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일본 못지않게 심각하다. 지난 이십수 년간 전반적인 이혼율은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전체 이혼 건수에서 차지하는 중년·황혼 이혼의 비율은 1990년 5%에서 2023년 무려 36%로 급증했다. 이처럼 급증한 중년·황혼 이혼의 배경에는 퇴직 후 부부 갈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언론 보도와 노후 설계 강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고민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퇴직 후 고위직 공무원이었던 한 남성은 퇴직 후 3개월간 집에 머물며 아내의 눈치를 보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주간노인보호센터에서 주 5일, 하루 5~6시간 일하며 월 70만 원과 건강보험료 30만 원을 벌게 되자, ‘그렇게 무섭던 아내가 천사로 바뀌었다’는 경험담은 이러한 갈등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TV 토크쇼에서도 퇴직한 남편이 집에 머무는 것에 대해 남편과 아내 모두 불편함을 느낀다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여성들은 남편의 수발과 잔소리에, 남성들은 아내의 눈치가 보여 느끼는 서글픔과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퇴직 후 노후자금 마련만큼이나 부부 화목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절실하다. 일본의 노후 설계 전문가들은 퇴직을 앞둔 부부들에게 퇴직 후에도 부부간의 화목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조언한다. 특히 낮 시간 동안은 가능한 한 부부가 각자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수입을 얻는 일이든, 사회공헌활동이든, 취미 활동이든, 혹은 이 세 가지를 겸한 활동이든 각자의 독립적인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건강한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노력만이 남편의 퇴직으로 인해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절벽’을 넘어,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는 길이다.

    ◆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 전 미래에셋 부회장

    대우증권 상무, 현대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로 일하고 있다.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 시절, 현지의 고령화 문제를 직접 마주하면서 노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품격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다양한 설계 방법을 공부하고 설파하고 있다.

  • 18년 만의 국민연금 개혁, 고갈 위기 선제 대응 위한 ‘구조개혁’의 출발점 열리다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37년 만에 보험료율이 큰 폭으로 인상되며 일단락된 이번 개혁은 단순한 재정 수지 보전을 넘어, 한국 사회가 직면한 급격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구조개혁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다. 지난 2025년 봄, 18년 만에 이루어진 이번 개혁은 그동안 반복적으로 유예되었던 연금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연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개혁이 추진된 근본적인 문제는 고령화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미래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연금 재정에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위기감이다. 전통적인 부과방식(pay-as-you-go) 연금 구조는 현재 일하는 세대가 은퇴 세대의 연금을 부담하는 방식이기에,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보험료 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유럽 국가들이 이러한 구조에서 적립기금 없이 보험료율을 20% 이상으로 올리거나 대규모 국고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 역시 2050년에는 인구의 40%가 65세 이상이 되고, 2070년에는 생산연령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울트라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러한 연금 재정 설계 문제는 세대 간 정의와 제도의 존속을 위한 핵심적 관건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번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13%로, 소득대체율을 43%로 인상하는 모수개혁안을 핵심으로 제시했다. 이는 국민의 부담 능력을 고려하면서도 노후소득 보장성을 일정 수준 강화한 정치적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구체적으로는 1988년 3%로 시작해 1998년 9%까지 인상된 이후 27년간 동결되었던 보험료율을 13%로 올림으로써,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더불어 국민연금법 제3조의 2를 개정하여 국가의 연금지급 책임을 명문화하고, 출산 및 군 복무 크레딧을 확대하며, 저소득층에 대한 보험료 지원을 강화하는 등 청년 세대의 연금 가입 기간을 보완하고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도 마련되었다.

    이러한 개혁은 당장 수년간 적립기금을 사용하지 않고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 지출을 충당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금의 운용수익이 재정의 중요한 축으로 온전히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급격한 재정 위기 상황에서 ‘급한 불’을 끄고,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석재은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개혁을 단순한 보험료 인상이 아닌, 기금이 고갈되기 전 구조개혁을 준비할 수 있는 전략적 시점에 이루어진 역사적 전환이라고 평가하며, 제도의 ‘완결’이 아닌 지속 가능한 연금을 향한 로드맵의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했다.

    앞으로 한국은 연금의 위기시계가 본격화되기 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로서, 이번 개혁을 미래세대를 위한 준비의 첫걸음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번 개혁은 모수개혁을 넘어 구조개혁 논의를 본격화하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향후에는 보험료율 추가 인상, 수급 연령 상향, 자동 조정 장치 도입 등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과 함께, 기초연금의 빈곤 해소 집중, 국민연금의 소득 비례 연금으로의 재편, 다층 노후소득체계 정비 등 보장성 강화 방안도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특정 세대의 이익을 넘어, 세대 간 신뢰를 지키고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기반 인프라인 공적연금의 역할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18년 만의 국민연금 개혁, ‘기금고갈 위기’ 넘어 ‘지속가능한 연금’으로 가는 출발선에 서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지 37년 만에 보험료율 인상이 단행되며, 18년간 반복되었던 개혁 논의가 마침내 일단락되었다. 이는 단순한 보험료율 인상을 넘어, 기금 고갈이라는 임박한 위기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연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과거 5년마다 재정계산 시점마다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번번이 유예되었던 전례를 볼 때, 이번 개혁은 정치권의 결단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룬 중대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번 개혁안의 핵심은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로 인상하는 모수개혁이다. 이는 국민의 부담 능력을 고려하면서도 노후소득 보장성을 일정 수준 강화하려는 정치적 절충안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모수개혁을 통해 당장 수년간은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 지출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기금의 운용수익이 재정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즉, 기금 고갈 시점을 8~15년 연장하는 효과와 함께,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혁은 제도의 ‘완결’이 아닌, 지속가능한 연금을 향한 로드맵의 ‘출발점’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이번 개혁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연금 재정 운영 방식의 변화를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 중 하나로, 2050년에는 인구의 40%가 65세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연금재정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는 세대 간 정의와 제도 존속을 위한 핵심 과제다. 전통적인 부과방식(pay-as-you-go) 연금은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보험료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진다. 하지만 이번 보험료율 인상을 통해 한국은 현재 1,200조 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적립기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보험료 수입과 운용수익이라는 두 개의 재정 축이 기능하는 ‘준 적립방식(partially funded)’으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노동인구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고, 미래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보험료 부담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더불어 이번 개혁은 청년 세대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조치들도 포함했다. 국민연금법에 국가의 연금지급 책임을 명문화하고, 첫째아 출산 크레딧 12개월, 군 복무 크레딧 12개월을 인정하며,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확대 등 청년층의 연금 가입 기간을 보완하고 보장성을 높이는 장치들이 마련되었다. 이는 미래세대뿐만 아니라 현재 제도를 이용하는 모든 국민에게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반영한다.

    이번 개혁은 단순한 모수개혁을 넘어, 향후 본격화될 구조개혁 논의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향후 보험료율 추가 인상, 수급연령 상향,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이 필요하다. 또한, 보장성 강화를 위해 기초연금은 빈곤 해소에 집중하고, 국민연금은 소득 비례 연금으로 재편하며, 적용 포괄성과 가입 기간 확대, 퇴직연금 내실화 등 다층 노후소득 체계 정비도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공적연금은 특정 세대의 이익이 아닌, 세대 간 신뢰와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기반 인프라로서, 이번 개혁은 그 원칙을 지키면서 미래를 향한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첫걸음이었다.

  • 옛 추억 소환하는 ‘할매 빙수’, 부산 시민들의 여름을 사로잡다

    옛날, 여름이면 방송사마다 ‘납량특집’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한 맺힌 소복 귀신이 복수를 하는 이야기는 여름 더위를 잊게 하는 소재였다. ‘납량(納凉)’이란 본래 시원함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귀신 이야기가 방송의 납량이라면 음식으로서 빙수는 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역할을 했다. 어린 시절, 십 원짜리 빙수조차 주머니 사정 때문에 즐기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학교 앞 무허가 분식집이나 만화가게에서는 주물로 만든 수동 빙수기계로 얼음을 갈아 색소를 뿌린 빙수를 팔았는데, 그 한 그릇이 겨우 십 원이었다. 에펠탑처럼 생긴 빙수기계에서 얼음이 깎여 떨어지는 모습만 봐도 더위를 쫓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돈이 없어 침만 흘리며 구경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좀 더 시내로 나가면 제과점에서 팥빙수나 ‘후루츠칵테일’ 빙수를 맛볼 수 있었다. 이는 동네에서 파는 허름한 빙수와는 차원이 다른, 우유와 연유를 넣어 곱게 간 얼음으로 만든 고급스러운 맛을 자랑했다. 산처럼 쌓인 얼음이 금세 허물어지는 것처럼, 빙수를 먹는 짧은 순간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눈꽃 빙수가 등장했고, 빙수는 더 이상 여름 전용 메뉴가 아닌 사계절 별미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빙수 전문 카페와 10만 원에 육박하는 최고급 빙수를 내놓는 호텔까지 등장하며 우리는 ‘빙수 왕국’에 살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빙수 왕국은 단연 부산이다. 부산에는 광복동과 용호동에 빙수 거리가 형성되어 있으며, 국제시장에서는 빙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부산이 왜 빙수의 도시가 되었을까. 이곳 주인들은 생선 얼린 데 얼음이 필요하고, 이것이 빙수 재료가 된다고 말한다. 더운 날씨에 시원한 빙수가 더욱 절실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부산에는 비싸고 화려한 빙수도 많지만,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수수하고 담박한 옛날 빙수, 즉 ‘할매 빙수’이다. 부산 국밥에 ‘할매’라는 이름이 붙는 것처럼, 빙수에도 ‘할매’라는 이름이 붙어 푸근하고 구미를 당기는 매력을 발산한다.

    부산 빙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고명 대신, 팥을 푸짐하게 얹어준다. 전국적으로 유행한 얇게 깎아 부드러운 식감의 ‘눈꽃 빙수’의 오리지널이 부산이라고 하지만, 많은 이들은 소박하고 투박한 부산식 할매 빙수를 더 좋아한다. 너무 달지 않은 팥이 할머니의 정처럼 얼음 위에 푸짐하게 담겨,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면 간식이나 디저트가 아닌 든든한 한 끼 식사를 한 듯한 만족감을 준다.

    미국에 사는 친구는 여름이면 몇 시간씩 차를 몰아 냉면을 먹으러 갈 정도로 냉면 마니아인데, 돌아오는 길에 팥빙수를 사 먹곤 한다. 그는 최근 “조선시대 얼음 창고가 있던 동네에 살았고, 할아버지 대에는 겨울이면 한강에 나가 얼음 부역을 했다”며, 팥빙수 그릇 앞에 앉으면 왜 그런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자신이 늙어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는 조선시대 얼음 저장 방식과도 연결된다. 당시에는 한강에 나가 캐낸 얼음을 강가 서빙고와 동빙고에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에 궁으로 날라다 썼다. 궁에서는 얼음을 냉장고처럼 사용하여 음식 재료의 부패를 막는 용도로 사용했다. 서민들이 얼음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겨울뿐이었으며, 여름 얼음은 궁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얼음이 얼마나 귀했는지 옛이야기를 통해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얼음으로 만든 최고의 음식인 팥빙수를 맛보기 위해, 여름이 저물기 전에 부산으로 향하는 것은 매력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 은퇴 후 ‘남편 재택 스트레스’로 인한 부부 갈등, 황혼이혼의 복병으로 떠오르다

    평생을 함께 해온 부부가 은퇴 후 ‘집 안의 낯선 사람’으로 전락하며 심각한 갈등을 겪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퇴직 후 수입 부족만큼이나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은 바로 ‘부부 화목’의 위기이며, 특히 남편의 갑작스러운 가정 복귀로 인한 아내의 스트레스가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 심한 경우 ‘부원병’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이 일본의 사례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남편이 현역 시절, 부부는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왔다는 점이다. 남편은 회사 일에, 아내는 가사와 육아에 집중하며 배우자의 일상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남편이 퇴직하여 평일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면서, 이전에는 문제 되지 않았던 남편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이 아내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우울증, 고혈압, 천식, 공황장애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심지어는 중년 및 황혼이혼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전체 이혼 건수 중 혼인 지속 기간 20년 이상인 중년·황혼이혼의 비율이 1990년 14%에서 2023년 23%로 증가했다.

    이러한 퇴직 후 부부 갈등은 우리나라에서도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 이십수 년간 국내 이혼율 자체는 꾸준히 낮아져 왔지만, 전체 이혼 건수에서 차지하는 중년·황혼이혼의 비율은 1990년 5%에서 2023년 무려 36%로 급증했다. 이러한 급증 배경에는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퇴직한 고위직 공무원의 사례처럼, 은퇴 후 ‘갈 곳 없는’ 남편이 가정에 머무르며 아내의 눈치를 보거나, 오히려 아내에게 부담을 주는 상황은 흔하게 발생한다. 한 수기에서는 퇴직 후 3개월간 집에서 놀아보니 답답함을 느끼고, 아내의 눈치를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이 담겨 있다. 또한, 한 노인보호센터에서 일하게 된 퇴직 공무원은 월 100만 원을 벌어오고 가정에 없게 되면서 “그렇게 무섭던 아내가 천사로 바뀌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TV 토크쇼에 출연한 남녀 참여자들 역시 퇴직한 남편이 낮에 집에 있는 것에 대해 대부분 불편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여성들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부담감과 잔소리 때문에 짜증을 느끼는 반면, 남성들은 아내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불편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는 부부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로, 퇴직 후에는 이러한 ‘분단된 세계’를 통합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함을 보여준다.

    일본의 노후 설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퇴직을 앞둔 부부들에게 퇴직 후 부부 화목을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조언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낮 동안 부부 각자가 자신의 시간을 갖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일본의 노후 설계 전문가 오가와 유리 씨는 퇴직 후 가장 인기 있는 남편은 ‘낮에는 집에 없는 남편’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각자의 활동을 통해 개인의 삶의 영역을 유지하는 것이 부부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은퇴 후 노후 자금 마련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부부 화목이다. 현재 우리는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중년·황혼이혼이 증가하는 추세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퇴직 후 부부 갈등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인식과 적극적인 대처가 시급함을 시사한다. 부부 모두가 수입 활동, 사회 공헌 활동, 취미 활동 등 각자의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