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문화/생활

  • 강화, 쇠락한 직물 산업의 부활과 새우젓의 애잔한 향수

    강화도에서 시작된 소창 직물 산업은 한때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으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33년 ‘조양방직’의 설립을 시작으로 1970년대까지 60개가 넘는 방직공장이 성행했던 강화는 이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잊혀가는 듯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폐업한 ‘동광직물’을 생활문화센터로, ‘평화직물’ 터를 ‘소창체험관’으로 새롭게 단장하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쇠락했던 산업을 되살리고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과거 강화는 대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직물 도시로 손꼽힐 만큼 직물 산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당시 강화읍 권역에는 60여 개의 공장이 운영되었고, 4,000명에 달하는 직공들이 일하며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면화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 소창은 옷감, 행주, 기저귀 등 다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지에서 면화를 수입하여 생산이 이루어졌다. 현재도 6개의 소창 공장이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소창을 직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강화직물의 역사와 문화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는 이러한 강화 직물의 역사를 체감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한편, 강화도는 해안 지역의 풍부한 갯벌과 한강, 임진강이 만나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새우젓 생산지이기도 하다. 특히 강화 새우젓은 짠맛보다는 들큼하면서도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며, 늦가을 김장철이면 새우젓을 사려는 사람들로 섬이 들썩일 정도다. 이러한 새우젓은 강화의 소박한 향토 음식인 ‘젓국갈비’의 주재료로 활용된다. ‘젓국갈비’는 갈비, 호박, 두부, 배추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지만, 새우젓이 주는 독특한 감칠맛과 풍미가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 이는 화려한 재료 없이도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내는 강화의 음식 문화를 잘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새우젓은 억척스러운 강화 여인들이 방직물을 팔러 전국을 다니며 쉰밥, 찬밥에 곁들여 먹었던 귀한 찬이기도 했다. 중간 상인 없이 직접 판매하여 좋은 마진을 남겼지만, 먼 길을 떠나 배고픔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그 시절, 새우젓은 그들에게 유일한 위안이자 귀한 음식이자였다. 당시 강화 여인들이 품팔이를 나설 때 앞치마에 싸가던 새우젓과, 어린 동생들의 기저귀를 삶아 키우던 어머니의 모습은 함민복 시인의 시처럼 우리네 인생의 애잔함을 떠올리게 한다. 쇠락한 직물 산업의 부활과 새우젓에 얽힌 삶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강화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깊은 역사와 삶의 향수를 간직한 특별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 예술계의 미래, 서울에서 길을 묻다: 서울국제예술포럼 첫 개최

    서울의 예술계가 직면한 미래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장이 마련된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예술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한 탐색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송형종)이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오는 11월 4일(화) 오후 1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아트홀 2관에서는 ‘서울국제예술포럼(SAFT, Seoul·Arts·Future Talks)’이 처음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이 포럼은 ‘서울에서 세계가 함께 이야기하는 예술과 미래’라는 주제 아래, 국내외 예술계 리더들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안을 공유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 포럼의 개최 배경에는 서울 예술계가 풀어야 할 복합적인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기술 발전과 융합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또한, 글로벌 예술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서울을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만들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서울국제예술포럼’이라는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게 된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번 포럼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으로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심도 있는 논의를 제공한다. ‘서울에서 세계가 함께 이야기하는 예술과 미래’라는 주제는 현재 서울 예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포럼에서는 참여자들이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예술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전략을 제시하며, 서로의 통찰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이론적인 논의에 그치지 않고, 서울의 예술 정책 및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국제예술포럼’이 성공적으로 개최된다면, 서울 예술계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포럼을 통해 도출된 다양한 논의 결과와 인사이트는 앞으로 서울의 예술 정책 수립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며, 예술가, 기관,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소통하는 예술 생태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서울이 글로벌 예술 담론을 선도하는 도시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중요한 동력을 얻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 K-콘텐츠의 새 지평, ‘케데헌’이 불러온 글로벌 문화의 로컬 전용과 디아스포라 서사

    전 세계 언론의 문화비평란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현상은 단순한 한류 인기의 확장을 넘어, 글로벌 문화가 로컬을 성공적으로 전용한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가는 ‘케데헌’은 한국 문화산업이 기존에 직면했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서사 자원과 가능성을 열어젖혔다는 분석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한국인이 제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화의 정수인 무당 서사와 최신 유행인 케이팝을 결합하며 글로벌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는 마치 <뮬란>이나 <쿵푸팬더>처럼 글로벌 문화가 특정 로컬 문화를 차용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케데헌’의 초반 ‘무당 헌터스’ 영상에서 보여준 놀라운 세계관 설정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임무를 잊는 캐릭터 ‘호랑이 더피’의 등장 등은 원본에 대한 집착 없이 소통 능력을 극대화한 캐릭터 활용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는 한국 문화산업 자체 제작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평가되며, 로컬의 을 글로벌 무대에 효과적으로 소통시키는 교본으로 여겨질 정도다.

    특히 ‘케데헌’은 북미의 한인 2세 원작자 및 제작자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애플 TV의 <파친코>와 유사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파친코>가 한국 실사 드라마로서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했다면, ‘케데헌’은 한국 문화의 오랜 무당 서사와 케이팝이라는 대중문화를 서울의 상징적인 장소들에서 펼쳐 보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차이가 있다. <파친코>가 세트에서 재현된 한국의 모습으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끌지 못했던 것과 달리, ‘케데헌’이 그려낸 서울의 풍경은 노스텔지어와 호기심을 자극하며 실제 서울로의 여행을 유도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케데헌’이 디즈니의 가족용 뮤지컬 영화들과 비교되며 반복 시청과 싱어롱을 유발하는 현상은, 기존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독점하던 삽입곡 시장에 강력한 대안이 등장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소니의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기술을 활용한 역동적인 캐릭터 움직임, 적극적인 시청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텍스트 전략, 디테일이 살아있는 일러스트레이션, 그리고 케이팝의 강력한 에너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표현 양식은 탈식민적 세계화에서 장애물로 작용했던 비서구인의 ‘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는 데 기여했다. 이전까지 케이팝은 아이돌의 ‘아시아성’이라는 틀에 갇혀 팬덤의 영역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으나,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장벽을 낮추거나 완전히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림으로 표현된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는 인종적 복잡성을 배제하고 전 세계 시청자가 호감을 느끼기 쉬우며 코스프레 또한 용이하다. 이는 최근 플레이브, 이세계 아이돌과 같은 버추얼 아이돌 그룹이 해외 투어를 성공적으로 진행할 만큼 발전한 케이팝 문화 속 캐릭터 문화의 진전을 보여주며, ‘케데헌’을 통해 이 캐릭터들이 세계관을 가진 채 글로벌 케이팝 무대에 데뷔한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케이팝 문화에서 세계관, 즉 그룹의 서사는 그룹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팬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핵심 요소이다. 현 시대 글로벌 문화 환경에서 가치 지향성이 중시되는 가운데, ‘케데헌’의 인간적이고 공동체적인 세계관 속 걸그룹 및 보이그룹은 디즈니의 자아 발견 공주 이야기, 일본 애니메이션의 개인 성장 스토리, DC와 마블의 우주 대전쟁 서사와는 다른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처럼 ‘케데헌’은 수많은 프리퀄과 시퀄로 확장될 수 있는 개방적인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다. 동시대적으로는 헌터스들의 세계 투어 중 로컬 ‘귀마’들과 싸우는 스토리 라인을 통해 다양한 로컬 버전의 탄생이 가능하다. 이러한 형식적, 서사적 가능성에 더해, ‘케데헌’은 한국인 디아스포라와 그들의 역사적 경험이라는 새로운 서사 자원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북미 한인 2세 제작자들의 독특한 한국 문화 경험과 애정이 녹아든 ‘케데헌’은 글로벌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문화적 중재(mediation)’의 힘을 보여준다.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은 한국인의 경험을 통해 세계사를 포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만들어냈으며, 이는 한류를 넘어 한국의 미래가 한인 디아스포라와 어떻게 연결될지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다. ‘케데헌’을 통해 한류는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은 한류 연구자로 팬덤 온라인 참여 관찰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다양한 연구 방법을 수행해왔으며, 스스로를 세상 속 의미 생산을 탐구하는 기호학자로 이해한다. 그는 <세계화와 디지털문화시대의 한류>, <드라마의 모든 것>, 를 출판했으며, 넷플릭스의 영향, 한국 문화산업, 한류 현상의 이론화를 위해 국제적 연구자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다년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100만 년 제주의 숨결, 용머리해안의 장엄함과 고사리해장국의 깊은 맛

    제주 관광의 중심에 늘 자리하던 제주도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코로나19 이전에는 국내 최대 관광지로 인파가 끊이지 않았으나, 현재는 일본, 중국, 베트남 등 해외여행 수요 증가로 인해 국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든 상황이다. 높은 물가와 같은 몇 가지 이슈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여전히 제주도는 국내 여행 1번지로서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용머리해안’은 국내 관광 콘텐츠인 ‘로컬100’에 이름을 올린 제주도의 중요한 유산으로,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방문할 시간이 맞지 않아 가보지 못한 제주 사람들도 많을 정도로 숨겨진 보석과도 같다.

    용머리해안은 방문객의 수고로움을 요구하는 특별한 장소다.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를 맞춰야만 출입이 가능하며, 거센 비바람이 불 경우에는 출입이 금지되므로 매일 오전 9시에 문을 여는 관광안내소에 입장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미끄럽지 않은 편안한 신발을 신고 용머리해안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설렘을 안겨준다. 용머리해안이 자리 잡은 서귀포시 안덕면에 이르기 전, 저 멀리 시선을 사로잡는 거대한 돌덩이인 ‘산방산’은 제주의 신화와 역사를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산방산’에 얽힌 설문대 할망 신화는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져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한라산보다 앞서 생성된 지질학적 현상이다.

    용머리해안은 산방산과 함께 제주의 지질학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으로, 한라산과 산방산, 그리고 제주 본토가 형성되기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화산체다. 약 100만 년 전 얕은 바다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간헐적으로 여러 분화구에서 계속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화산재가 쌓이고 깎여나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지금의 용머리해안을 만들었다. 이곳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자 태곳적 땅이라 할 수 있다. 용암과 바다,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풍경은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으며, 직접 보아야만 그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검은 현무암과 옥색 바다가 기묘하게 얽히는 풍경 속에서 100만 년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작은 방처럼 움푹 들어간 굴방, 드넓은 암벽의 침식 지대, 그리고 오랜 세월 쌓여 만들어진 사암층과 파도가 빚어낸 해안 절벽은 방문객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바위가 용의 머리처럼 생겨 ‘용머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 땅은 예로부터 영험한 기운을 지닌 곳으로 여겨졌다. 진시황이 이곳의 혈맥을 끊기 위해 보낸 사자가 용의 허리와 꼬리를 끊었다는 전설은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에 얽힌 신비로움을 더한다. 용의 피가 솟구쳐 만들어졌다는 기암절벽, 층층이 쌓인 지층, 그리고 뻥뻥 뚫린 구멍들은 제주 최초의 속살을 만나는 듯한 환희를 느끼게 한다. 파도가 철썩이는 곳에서는 거북손과 다양한 어패류들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으며, 제주 할망과 아낙들이 좌판을 펴고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짧은 삶은 겸손해진다.

    용머리해안에서의 여정은 약 한 시간 정도 소요되며, 이 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바로 고사리해장국이다. 화산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물과 곡식이 부족했던 제주에서 오랜 시간 제주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두 가지 작물은 고사리와 메밀이었다. 척박한 화산암에서도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빗물을 저장하는 다년생 양치식물인 고사리는 제주 생태계의 시작이자 식재료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성이 있지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고사리를 삶고 말려 독성과 쓰린 맛을 제거한 뒤 즐겼으며, 먹을 것이 부족했던 제주에서 고사리는 더욱 귀한 식재료였다.

    제주 사람들에게 고사리해장국은 ‘소울푸드’라 할 수 있다. 논농사가 어려웠던 제주에서는 소보다 돼지를 주로 키웠으며, 잔치에는 항상 돼지가 잡혔다. 돔베고기를 만들고 남은 돼지 뼈로 곤 육수는 다양한 국물 요리의 기반이 되었다. 돼지 뼈 육수에 돼지 살코기와 고사리를 넣고 푹 끓이면 걸쭉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고사리해장국이 완성된다. 육개장의 고사리가 소고기를 대신하는 것처럼, 고사리는 쫄깃한 식감과 풍부한 맛을 더하며, 여기에 메밀가루를 더하면 더욱 걸쭉하고 은은한 감칠맛을 자랑하는 고사리해장국이 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사리해장국은 메밀가루 때문에 약간 갈색 빛이 도는 검붉은 색이지만,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면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메밀 전분이 풀어져 걸쭉해진 국물은 전혀 자극적이지 않으며, 제주 사투리로 ‘베지근하다’고 표현되는, 기름진 맛이 깊으면서도 담백한 맛을 선사한다. ‘베지근하다’는 말은 고기 따위를 푹 끓인 국물이 구미를 당길 정도로 맛있다는 의미로,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는 뜻도 담고 있다. “국물맛이 베지근하우다!”라는 표현은 맛을 제대로 칭찬하는 최상급 표현이다. 밥 한 공기를 말아 넣으면 고사리해장국의 농밀한 국물은 더욱 걸쭉해져 흡사 죽처럼 되직해지지만, 입에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가난과 통한의 연속이었던 제주 사람들의 삶 속에서 탄생한 이 담백하고 유순한 맛은 그들의 인내와 지혜를 보여준다. 창밖으로 보이는 유채꽃과 산방산, 그리고 그 아래 엎드린 용머리해안을 바라보며 고사리해장국 한 그릇은 100만 년 제주의 역사를 관통하는 깊은 맛을 선사한다. 제주를 찾은 모두가 “폭싹 속았수다”라고 말할 만큼,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다.

  • 한류, 이름 붙여진 ‘꽃’에서 ‘진정한 여행’까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과제

    세계인이 열광하는 ‘한류’는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은 김춘수, 서정주, 김용락 시인의 작품과 나짐 히크메트의 시를 빌려 한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네 단계에 걸쳐 분석한다. 이는 단순한 문화 현상을 넘어, 한국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이 응축된 결과이자 세계와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진정한 여행’임을 강조한다.

    ◆ 이름 붙여진 순간, 실체가 된 한류: 김춘수의 ‘꽃’

    한류는 처음에는 그저 ‘몸짓’에 불과했다. 한국 드라마가 해외로 수출되고 K팝이 세계 팬들의 환호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이는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중화권 매체를 중심으로 ‘한류(Hallyu)’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처럼, 세계가 한류에 이름을 부여하고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문화적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한류는 수동적인 소비 대상이 아니라,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불리는 이름’을 얻고 정체성을 부여받으며 탄생했다. 이는 단순한 존재론을 넘어, 인식론적으로 한류가 세계 속에 ‘들어왔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역사적 울음 끝에 피어난 ‘한 송이 국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오늘날의 한류는 하루아침에 피어난 꽃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분단과 동족상잔의 아픔,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기다림, 즉 ‘역사적 울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는 구절처럼, 한류는 한국 현대사의 수난과 인고라는 ‘소쩍새 울음’과 ‘먹구름 속 천둥’을 거쳐 응결된 문화적 승화물이다. 이는 단절된 흐름이 아닌, 연속된 역사 속에서 한국 사회가 겪은 시련과 성공, 회복의 총체적 결정체로서 존재한다. 이 ‘기억의 꽃’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존재의 증언이자 시대의 결과로서 피어났으며, 그 의미와 대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언어를 넘어 마음을 두드리는 공감의 울림: 김용락의 ‘BTS에게’

    한류의 핵심 힘은 ‘진정성’에 있다. 김용락 시인의 ‘BTS에게’에서 “LOVE MYSELF, LOVE YOURSELF! / 나는 그대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게 되었지 /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 비로소 가슴이 뛰고 인간이 된다는 것을”이라는 고백처럼, BTS는 언어를 초월하여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감정의 번역자이자 시대의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들의 노래는 진심의 파동이며, 춤과 몸짓으로 쓰는 시다. 잘 만들어진 문화상품 이전에, 진심으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서 시작된 K-콘텐츠는 팬덤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공감의 공동체’이자 ‘문화의 공동 창작자’로 이끌었다. ‘다른 언어로도 마음속을 두드리는’ K-팝, K-드라마, K-콘텐츠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세계의 감수성과 접속하며 한류의 핵심 비결을 보여준다.

    ◆ 아직 쓰이지 않은 시, 계속될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

    한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에 있다. 나짐 히크메트 시인이 말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것처럼, 한류 역시 절정에 이르지 않았으며, 더 많은 서사, 더 깊은 공감, 더 다양한 목소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현재의 성과에 자만하거나 자족해서는 안 된다. 한류가 추구해야 할 미래상은 단순한 외연 확장이 아닌, 지속 가능한 가치, 다문화적 포용, 인간성의 회복에 있다. K-콘텐츠는 세계를 향해 말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 안의 진실도 말해야 하며, 외연을 넓히되 내면을 잊지 않을 때 ‘진정한 여행’은 계속될 수 있다. 창·제작자에게는 영감과 상상을, 정책 담당자에게는 기획과 비전을 제공하며, 수용자들에게는 향수와 감동을 선사해야 할 한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제조업 AI 전환, ‘선택 아닌 필수’… 부처 협력 강화로 돌파구 모색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빠른 발전은 산업 전반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제 산업 현장의 AI 도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제조업을 포함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AI를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가 및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지만, 현실은 아직 산업계가 가진 역량에 비해 현장의 AI 도입 및 활용률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간극을 좁히기 위해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가 손을 잡고 제조·산업 전반의 인공지능(AI) 대전환 협력을 본격화한다.

    이들 세 부처는 15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회의실에서 ‘산업 전반의 AX(AI 전환)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각 부처의 전문성과 역량을 융합하고 연계성 있는 정책을 통해 산업 전반의 성공적인 AI 전환 확산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협약의 주요 은 ▲산업 전반의 AI 전환 역량 강화 및 핵심 기술 내재화 ▲AI 벤처·스타트업과 중소·소상공인의 AI 기술 사업화 및 현장 맞춤형 AI 기술 개발 지원 ▲지역 핵심 산업군 중심의 AI 전환 생태계 조성 지원 ▲AI 관련 국정과제의 차질 없는 이행을 위한 적극 지원 등이다. 또한, 각 부처 산학연 전문가들 간의 기술 교류회 등을 추진하여 지역과 현장, 그리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 창출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갈 예정이다.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세 부처는 산업 전반의 AI 전환을 위한 모든 주기 지원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AI 핵심 기반 기술 확보부터 산업 적용, 그리고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으로의 확산까지 이어지는 부처 간 통합적 협력 구조를 통해 산업 전반의 AI 전환 속도를 높이고, 지역과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배경훈 부총리는 AI 대전환을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 미래 번영을 좌우하는 국가적 생존전략으로 규정하며, 대한민국의 제조 DNA 강점에 AI를 접목하여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기술력을 갖출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세 부처가 하나의 팀처럼 협력하여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과기정통부는 AI 전환 확산을 가속하기 위해 AI 기본 역량 구축과 내재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며, 이번 업무협약이 AI 핵심 기술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산업 전반의 AI 전환을 앞당기고 AI 스타트업과 함께 글로벌 신시장을 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인구 감소, 생산성 정체, 중국의 기술 추격 등 우리 산업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으로 AI 대전환을 제시하며, 생존을 위한 속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AI와 데이터, 제조 현장을 긴밀히 연결하고 우리의 장점을 지렛대 삼아 기술 혁신과 제조업의 고도화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업부가 관계부처 및 국가AI전략위원회와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여 유기적이고 실효성 높은 제조 AI 전환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AI가 산업과 비즈니스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AI 대전환 시대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AI를 활용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전하며, 세 부처가 함께하는 이번 협약이 정부 인프라와 대기업의 AI 기술 및 경험을 벤처·스타트업, 중소·소상공인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AI 벤처·스타트업에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중소·소상공인에게는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문영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상근 부위원장은 AI가 우리 기업의 체질 자체를 바꾸는 핵심 기술이기에, 대한민국의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해서는 각 산업 도메인의 전문성에 AI를 융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하며, 세 부처 간의 이번 업무협약 체결을 계기로 향후 위원회 산하 제조TF를 구성하여 AI 기반 산업 대전환을 중점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생태계 간과한 정책, 도시와 산업 모두 위기 자초

    세상 만사가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작동하지만, 이를 간과한 정책들이 결국 도시 공동화와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지방 혁신도시 건설과 신도심 개발 정책은 젊은 인구의 정착을 어렵게 만들며 원도심의 소멸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반도체 산업의 경우 생태계 경쟁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생태계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 생태계의 번성을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종 다양성’이다. 다양한 종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생태계 전체가 유지된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이 단일 품종의 감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종 다양성의 붕괴를 가져왔던 비극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둘째,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이다. 태양 에너지가 식물, 동물, 미생물을 거쳐 순환하고, 쓰러진 나무가 분해되어 다시 토양으로 돌아가는 과정처럼 끊임없는 순환 구조가 생태계 유지의 필수 요소이다. 셋째,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 없이 고립된 생태계는 유전적 취약성으로 인해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다. 이는 폐쇄된 가문 내에서의 반복적인 짝짓기로 발생하는 ‘근친교배 우울증’이나 ‘합스부르크 증후군’과 같은 사례로 설명될 수 있다.

    지방 도시들이 겪고 있는 ‘원도심 공동화’ 현상은 이러한 생태계적 관점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방의 활성화를 명목으로 건설된 혁신도시에는 정작 배우자를 위한 일자리가 부족하여 부부 중 한 명만 발령이 나더라도 가족 전체가 이주하기 어려운 현실이 발생한다. 또한, 인구 증가 없이 무분별하게 신도심에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기존 원도심은 유령도시화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지역 청년들은 창원과 부산처럼 지리적으로 가깝더라도 자동차 없이는 출퇴근이 불가능한 ‘마음의 거리’를 느끼며 서울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통근 전철’과 같은 교통망 구축 타당성 검토가 늘 난항을 겪는 것도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 추진의 필연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에 뒤처지는 이유 역시 생태계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파운드리 산업은 칩 설계부터 패키징 및 후공정까지 여러 전문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로 이루어져 있다.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패키징 기업 등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협력해야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IP 파트너 수나 패키징 기술 등 여러 단계에서 TSMC의 생태계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으며, 이러한 생태계 경쟁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개별적인 노력에만 집중한 결과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일 대부분이 고유의 생태계 안에서 작동함을 이해하고 이를 정책 수립과 산업 전략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태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정책은 결국 ‘귀신 나올지 두려운 원도심’, ‘독수공방의 혁신도시’를 만들고,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빌 클린턴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이 현재 상황을 본다면,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외쳤을 것이라는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의 지적은 이러한 현실을 명확히 짚어주고 있다.

  • 2026년 예산안: 성장의 엔진 교체와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방향 전환형 확장’

    2026년 정부 예산안은 단순한 경기 부양을 넘어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 전환형 확장’ 기조를 명확히 하고 있다. 총지출 728조 원, 전년 대비 8.1% 증가한 이번 예산은 경기 둔화와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구조적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로 구성된다. 총수입 증가율(3.5%)보다 총지출 증가율이 높은 점에서 정부는 적극적인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번 예산안이 제시된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복지 수요 증가는 불가피하며, 인공지능(AI)과 신산업으로의 산업구조 전환, 기후위기 대응 등 새로운 국가적 과제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간의 자생적 회복만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지속 성장을 뒷받침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국가채무가 1415조 원, GDP 대비 51.6%까지 상승하는 현상은 단순히 재정 악화로 치부할 수 없으며, 이러한 구조적 변화와 필수 투자로 인한 점진적인 흐름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투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솔루션’으로 2026년 예산안은 성장의 축을 바꾸기 위한 투자를 대폭 확대한다. AI 3강 도약을 위해 고성능 GPU 1만 5000장을 추가 확보하고, ‘AX 스프린트 300’ 프로그램을 통해 300개 생활밀착형 제품에 AI를 신속히 이식한다. AI 예산은 3조 3000억 원에서 10조 1000억 원으로 3배 이상 확대되었으며, R&D 예산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 3000억 원으로 19.3% 늘어났다. ‘ABCDEF(인공지능·바이오·문화콘텐츠·방위산업·에너지·첨단제조업)’ 분야 핵심기술 고도화와 5년간 100조 원 이상 투입될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유망 기업의 스케일업을 지원한다.

    동시에 ‘모두의 성장’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에도 주력한다.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 7세에서 8세로 높이고, 청년미래적금 신설을 통해 납입액 매칭 지원에 나선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으로 24만 명에게 월 15만 원을 지급하며, 지역거점 국립대 육성을 위한 예산을 4000억 원에서 9000억 원으로 배증했다. 지방 의료 및 교통 인프라 보강, 재난대응, 첨단국방, 한반도 평화 인프라 투자도 확대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 RE100 산단 및 분산형 전력망 구축, 전기차 전환지원금 확대, 녹색금융 지원을 통해 민간의 전환 비용을 낮추고, 문화·관광·콘텐츠 분야의 소프트파워 투자와 지역관광 활성화, 지역사랑상품권 등 민생 보강 장치도 병행된다.

    확장재정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된다.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연례성 행사·홍보성 경비와 같은 경상비를 줄이고, 중복·저성과 사업 1300여 개를 정비하며, 의무지출 제도의 틈새를 손보는 방식으로 약 27조 원을 절감하여 핵심 과제에 재투자한다. 이는 ‘줄일 것은 줄이고, 키울 것은 키우는’ 체질개선 없이는 확장재정이 건전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러한 ‘방향 전환형 확장’이 성공적으로 적용된다면, 2026년 예산안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전환을 이끌고 미래 안정과 성장 기반을 다지는 책임 있는 대응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정부는 중기 재정운용 계획을 통해 점차 총지출 증가폭을 줄이고 2029년까지 국가채무 비율을 50% 후반으로 관리하는 목표를 설정하며 재정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 AI 전환과 R&D 확대가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지고 수출·투자가 회복되어 세입이 견조해진다면, 채무비율 상승은 관리 가능한 범위에 머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번 예산은 ‘빚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장의 조건을 바꾸는 제안이며, 그 현실적 타협점 위에 서 있다.

  • 기후 위기 시대, 아시아 녹색 혁신 어디까지 왔나…에코 엑스포 아시아, 해법 모색

    전 지구적 기후 위기가 심화되면서 탄소 중립을 향한 사회 각계각층의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탄소 중립을 위한 녹색 혁신(Green Innovations for Carbon Neutrality)’을 주제로 한 ‘제20회 에코 엑스포 아시아(Eco Expo Asia)’가 오는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아시아월드엑스포에서 개최된다. 이번 행사는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거대한 과제 앞에서 아시아 지역의 혁신적인 해결책을 한데 모아 선보이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중요한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에코 엑스포 아시아는 12개 국가 및 지역에서 300개 이상의 참가 기업 및 기관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기획되었다. 이는 곧 탄소 중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방증하는 결과이다. 참가자들은 최첨단 친환경 기술과 솔루션을 선보이며, 탄소 배출량 감축, 신재생 에너지 개발, 자원 순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엑스포는 단순히 기술 전시를 넘어,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참가 기업들은 기후 위기라는 도전 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하며, 관련 정책 입안자 및 산업 관계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결론적으로, 제20회 에코 엑스포 아시아는 급변하는 기후 환경 속에서 아시아가 나아가야 할 녹색 혁신의 방향을 제시하고, 탄소 중립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연대와 협력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을 것으로 전망된다.

  • GDP 대비 낮은 한국의 사회지출, ‘조세 체계 수술’ 통해 저소득·중산층 소득 강화 시급

    대한민국 경제가 0%대 성장률 전망치라는 녹록지 않은 현실에 직면해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유지하며 소비 쿠폰 지급에도 불구하고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09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계 소비의 일부 개선에도 불구하고 건설 투자 부진과 수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을 반영한다. 특히 건설 투자 부진은 내부 문제로서 정부 정책과 의지에 따라 개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90년대 초반 이후 고도 성장이 멈추면서 대외 환경은 급변했고, 한국 경제는 소득 분배 악화라는 내부 문제에 직면했다. 기업들은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용 및 임금 인상 억제, 비정규직 선호, 생산 자동화, 생산 기지 해외 이전 등으로 대응했고, 이러한 충격의 비용은 고스란히 가계, 특히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전가되었다. 그 결과 경제에서 가계 소비의 역할은 하락하기 시작했고, 내수 취약성은 수출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 1991년 10.3%였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2011년 36.2%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출 의존 경제 구조는 세계 경제 환경 악화 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지난 30년 이상 가계의 소득과 소비가 억압된 결과, 외환위기 이전 5년간 가계당 실질 처분가능소득과 실질 가계소비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이 각각 4.8%와 7.1%였던 것에 반해, 외환위기 이후 27년간은 각각 0.7%와 0.8%로 급감했다. 이러한 소득 및 소비 둔화의 공백을 가계 부채로 메우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지난 30년간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은 1139조 원 증가하는 동안, 부동산 자산은 소득 증가분의 7.4배가 넘는 8428조 원이나 증가했다.

    문제는 성장 둔화와 인구 감소, 고금리 상황 속에서 생계 위기에 직면한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더 이상 가계 부채를 동원한 부동산 투기에 나설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2021년 4분기부터 가계 부채가 감소세로 전환하고, 지방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며 건설 투자 성장 기여도가 3년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배경에는 가계 소비의 구조적 취약성과 연결된 건설 투자 침체가 있으며, 그 근원은 바로 가계 소득의 억압에 있다. 따라서 가계 소득 강화는 이제 불가피한 과제가 되었다.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 쿠폰 지급은 이러한 경제 상황 속에서 이해될 수 있으나, 이는 일시적인 산소호흡기 역할에 그칠 뿐 우리 경제를 근본적으로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국가 재정 부담으로 인한 소비 쿠폰의 반복적 지급 역시 어렵다. 따라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기적인 가계 소득 지원, 그리고 이 지원금의 일정 비율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방안 도입이 시급하다.

    이러한 정기적 가계 소득은 ‘사회 임금’ 또는 ‘사회 소득’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생산의 결과물 중 일정 부분을 사회 몫으로 떼어내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으로 배분하는 것이 바로 사회 소득이다. 이는 시장 임금이나 시장 소득과 달리, 1인 1표 원리에 기반한 정치적 영역에서 결정된다.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사회 지출 규모(GDP 대비)는 15.326%로 OECD 평균 21.229%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는 GDP 2557조 원 기준으로 약 151조 원, 1인당 약 300만 원의 사회 소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4인 가족 기준으로는 연간 1200만 원, 월 1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러한 사회 소득의 절대적 과소는 시장 소득에 대한 과잉 의존과 불평등한 분배로 이어져 가계 소비 지출의 구조적 취약성을 야기한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소득 창출 활동자의 평균 월수입은 282만 원에 불과하며, 하위 41%는 최저임금 기준 월수입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을’ 간의 갈등을 일상화하는 배경이 된다. 정기적 사회 소득 도입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완화하고, 사회 소득의 일부를 지역 화폐로 지급함으로써 소상공인의 매출 어려움을 크게 해소할 수 있다.

    재원 마련을 위해 추가 세금 도입은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최고 개인 소득세율은 OECD 평균보다 낮지 않지만, GDP 대비 개인 소득세 비중은 낮은 편이다. 이는 누더기 같은 많은 공제 혜택으로 인해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이 제대로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약 1110조 원의 소득 중 약 410조 원에 공제 혜택이 적용되어 약 101조 원의 세금이 줄어들었다. 소득 상위 0.1%는 1인당 1억 1479만 원의 감세 혜택을 받은 반면, 중위 50%는 276만 원에 그쳤다.

    지난해 세금 공제액이 110조 원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행 공제 방식을 폐지하고 확보된 세금을 인적 공제만을 기준으로 전체 국민에게 1/n로 배분하면, 4인 가구 기준 연간 약 860만 원, 월 72만 원의 지급이 가능하다. 세금 공제의 재분배는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국민 대다수에게 순혜택을 제공하고, 소득이 낮을수록 순혜택이 증가하여 재분배 효과 또한 크다.

    결론적으로, 불공정한 조세 체계를 수술하여 정기적인 사회 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의 소득과 소비 지출을 강화하는 핵심적인 솔루션이다. 이는 나아가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AI 대전환 시대에 발맞춰 창업 및 양질의 일자리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